▲ 아버지 임윤빈씨는 임수혁과 매일 산책하며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다. | ||
―중국엔 왜 간 것인가.
▲애들 때문에 나왔다. 한국에선 ‘임수혁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놀림감이 됐다. 심지어 ‘너희 아빤 죽었지?’하는 얘기도 들을 정도였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상처 주기 싫어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시댁측에선 중국행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잘 알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7월이나 9월쯤에 한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때 내가 들어가서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정말 도망갔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을 것 아니냐. 또 한 가지, 만약 내가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중국의 전화번호를 시댁 쪽에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왜 중국을 택했나.
▲중국 청도에 친척이 살고 있다. 물가도 싸고 교육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서 결정하게 됐다.
―시아버지는 모든 돈을 갖고 간 걸로 알고 있다.
▲무슨 돈을 다 갖고 중국으로 왔다는 것인가. 구단에서 보상금으로 준 돈은 서울에 두고 왔다. 중국에선 돈을 벌면 쓸 수는 있어도 나라 밖으로는 못 갖고 나간다고 들었다.
―중국행에 대해 시댁과 의견충돌이 있었나.
▲시아버지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고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를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손자들의 교육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시아버지한테 좀 서운하다.
―시댁과 갈등을 빚은 가장 큰 이유가 뭔가.
▲결국은 돈 문제다. 시아버지는 날 못 믿는다. 솔직히 나도 시아버지를 믿기 힘들다. 수지 아파트의 전세금을 빼서 시아버지께 드리고 싶어도 금세 없어질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시댁에선 내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 무척 궁금해 하신다. 그러나 간병비, 병원비 등 지속적으로 나갈 돈이 있기 때문에 흥청망청 쓸 수가 없다. 애들 교육과 남편 치료비를 위해선 내가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말해 달라.
▲일단 7월쯤 들어갈 것이다. 중국은 학기가 9월에 시작하기 때문에 늦어도 9월 전에는 들어갈 생각이다. 3년 정도는 있어야 애들 교육에도 좋을 것 같은데 둘만 남겨놓을 수가 없어 같이 귀국할 것이다.
―귀국 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내가 직접 남편을 간병할 것이다. 시댁이 아니라 독립된 공간에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렇게 우리 가족 얘기가 기사화되는 부분에 대해 심히 우려를 금치 못한다. 그러나 한 번은 나올 얘기라고 생각했다. 내가 중국에 있다고 해서 남편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시각은 정말 억울하다. 내가 가장 소망하는 것은 아이들과 남편이 한 집에서 사는 것이다. 그럴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