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성 | ||
그중에서 박지성은 2004~2005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유럽 축구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유럽 에이전트들이 박지성을 데려가기 위해 다양한 영입 작전을 펼치고 있으며 공식·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러브콜’을 한 팀도 여럿이다. 그러나 국제전화를 통해 만난 박지성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그대로인 게 이상할 정도였다. 여전히 ‘~했습니다’로 끝나는 말투나 다소 편할 만한 사이인데도 극존칭을 사용하는 화법은 똑같았다. 강렬했던 챔피언스리그의 추억과 최근 핫이슈가 되고 있는 진로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서술한 ‘박지성의 깜짝일기’를 공개한다.
AC 밀란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끝났어도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미련이 커지는 것만 같다. 우린 충분히 AC밀란을 이길 수 있었다. 객관적인 전력으론 PSV가 한수 아래였지만 선수들 분위기는 이제까지 봤던 팀워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절정을 이뤘다. 운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축구인생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했다. 특히 내 실력을, 내 능력을 유럽인들의 눈과 귀가 모인 장소에서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는 건 지금까지도 날 흥분하게 한다.
인기 요즘 한국의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에 대한 과분한 칭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곳 매스컴들도 장난이 아니다. 네덜란드 와서 최근엔 수십 차례의 인터뷰를 소화해 냈다. 그러나 솔직히 난 별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 운동장에서만 축구선수 박지성을 좋아해줬음 한다.
훈련이 끝나면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 아니면 내 인기가 어느 정도 올라갔는지 실감조차 못한다. 특히 이곳 사람들은 경기장이나 훈련장 근처에선 사인을 요청해도 사생활 속에 있을 때 선수한테 사인을 부탁하는 일이 드물다. 난 평범한 박지성이길 소원한다.
휴식 챔피언스리그는 끝났지만 이곳 일정은 계속되고 있다. 암스텔컵 결승전을 치러야 네덜란드의 후기 리그가 ‘쫑’을 칠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우즈베키스탄으로 날아가 대표팀에 합류해야 한다. 월드컵 예선전이 끝나면 비로소 휴식 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기간이 약 한 달 정도다. 아, 한달이라! 나한텐 너무나 소중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들이다. 시즌이 막바지로 치달아서 그런지 요즘엔 체력적으로 지치고 힘들다. 기자분들이 나에게 ‘체력의 화신’ 운운하는데 나도 사람이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내가 치른 경기 일정들을 소화하기까지엔 보이지 않는 노력도 필요했다. 아마도 그라운드에선 체력보단 정신력으로 뛰는 것 같다. 지금 내 상태론 그게 딱 맞는 말이다.
히딩크 아직은 나이가 어려 많은 감독님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까지 내가 만난 감독님들 중 히딩크 감독님은 평생 잊지 못할 분이다. 히딩크 감독님의 장점이자 매력은 선수 개개인의 성격과 능력을 완전히 파악하신다는 사실이다. 선수들을 어떻게 해줘야 자기의 능력을 백퍼센트 발휘할 수 있는지를 ‘여우같이’ 꿰고 계신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치들을 통해 유도해낸다.
▲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박주영 언젠가는 박주영이란 친구가 대표팀에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박주영처럼 어린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해서 정당한 경쟁을 통해 주전을 차지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박주영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린 선수들이 더 많이 들어와야 한다.
난 열여덟 살 때 처음으로 성인대표팀에 합류했다. 그 당시 올림픽대표팀 멤버들이 성인대표팀에 많이 뽑힌 터라 나도 엉겁결에 그 분위기를 탔던 것 같다.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았다.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대표팀 선배들을 직접 보는 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긴장을 많이 했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어느덧 6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한마디로 ‘후다닥’ 지나간 것 같다. 박주영도 6년 후 나보다 더 안정된 상태에서 성인대표팀에 처음 발탁됐을 당시를 회상할지도 모르겠다.
선택 <일요신문>을 통해 박주영이 내가 걸어온 길을 ‘벤치마킹’하려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방법이 옳을 수도 있고, 곧바로 빅리그에 진출하는 게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개인 차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을 택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선택이 어떤 것인지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진로 요즘 내 팬들의 반응이 두 가지로 엇갈려 있다. 하나는 ‘지금이 최고의 전성기니 오라는 데 있을 때 빨리 빅리그로 진출하라’는 것과 ‘1~2년 더 히딩크 감독 밑에 있다가 빅리그에 가도 늦지 않다’는 시각이다. 둘 다 일리있는 주장들이다.
내 입을 통해 처음으로 밝힌다. 지금 당장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토록 소원했던 프리미어리그에도 진출할 수 있다. 그러나 1~2년 후, PSV가 지금과 같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고 해도 빅리그에는 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운이 지독히 나빠 부상당하는 상황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지금이나 1,2년 후나 난 내가 가고 싶은 팀을 골라서 갈 자신이 있다.
그런데 지금이냐, 나중이냐보다는 어느 팀에서, 어떻게 성공하느냐가 나한텐 더 중요한 문제다. 시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진로를 결정하든, 내 팬들이라면 날 믿고 응원해 줄 것이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