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영 선수 캐리커쳐=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슈퍼루키’ 박주영(20·FC서울). 아니 ‘대한민국 축구의 구세주’라고 별명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만한 이 선수의 존재에 대해 지난 3일 밤 한국 축구팬들은 다시 한번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축구팬들뿐만 아니라 조 본프레레 한국대표팀 감독이나 모든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도 박주영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3일 열린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우즈벡 원정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에 터진 박주영의 동점포가 아니었다면 한국은 독일 본선행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질 뻔했다. 0-1로 뒤지던 상황에서의 동점골은 그의 실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지만, 만약 한국이 크게 이기고 있었더라면 박주영의 골이 그리 빛나지 않았을 터, 인기스타로 성장할 천운을 타고 난 것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박주영은 A매치 데뷔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대표팀 내에서의 입지가 한층 더 커지게 됐지만 사실 3일 경기 당일까지도 팀 내에서 박주영은 그의 실력이나 인기만큼 대우 받지는 못했다.
어느 조직에서든 막내라는 위치는 그리 녹록지 않다. 청소년무대와 K리그를 휩쓸며 국내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떠오른 박주영이지만 어쨌든 대표팀 내에선 이제 막 대표 생활을 시작한 풋내기에 불과하다. 대표팀 내에서 그의 위치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표현이 바로 “주영아, 기자들 온다 너 절루 가라”다. 아직 막내이면서도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박주영에 대한 선배들의 부러움과 시기가 함께 섞인 표현이다. ‘기자들이 자꾸 와서 귀찮게 하는데 너(박주영)만 따로 가면 다 너 쫓아갈 테니 기자들 데리고 빠지라’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원정2연전을 출발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각종 매체들이 출국을 준비하던 대표팀 선수들을 괴롭히자 일부 선배 선수들이 “야, 주영아 네가 기자들 좀 처리해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박주영의 대표팀 내 현주소다.
박주영이 속한 공격수 포지션은 최근 한국대표팀에서도 가장 주전 경쟁이 심한 자리다. 박주영은 이번 우즈벡전에서 예상대로 왼쪽 공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본프레레호의 황태자’ 이동국도, ‘일등병’ 정경호도 쉽게 움켜쥐지 못한 선발명단에 박주영이 가뿐히 올라선 것. ‘훅 불면 툭하고 쓰러질 것 같다’고 평가절하하던 본프레레 감독이 그를 선발 기용한 것도 참 놀라운 일이지만 결국 패했다면 낙마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던 본프레레를 박주영이 구제한 것은 더더욱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3일 첫 A매치에 나선 박주영은 청소년팀이나 소속팀 FC서울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거침없는 플레이를 상실하고 있었다. 전반에 그가 볼을 잡은 횟수는 손가락을 셀 수 있을 정도. 그나마 가끔 공격 기회가 생겨도 전매특허인 수비수를 따돌린 뒤 슈팅을 때리는 대신, 안정환이나 차두리에게 패스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막내라는 부담감이 아니었다면 그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터.
그러나 결국 후반 들어 안정환과 차두리가 빠지고 이동국과 투톱으로 나서며 어떻게든 자신이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오자, 박주영은 그제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경호의 패스를 논스톱으로 골문 안쪽으로 꽂아 넣는 통쾌한 슛. 경기 말미에 터진 그의 동점포가 결국 한국축구를 살렸고 본프레레를 살렸다.
이날 박주영의 활약으로 대표팀 공격진의 지각 변동이 불가피하게 됐다. 당장 9일 새벽 열리는 쿠웨이트와의 최종예선 5차전부터 대표팀 공격라인의 변화가 예상된다. 3일 우즈벡 전에서 선보인 박주영(좌)-안정환(중)-차두리(우)의 3톱 선발라인이 다시 등용되기는 힘들 듯. 박주영이 이날 투톱으로서 전환하며 특유의 활약을 선보였다는 점, 안정환이나 차두리가 이날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 또 이동국이 중동국가에 특히 강하다는 점 등이 변수다. 박주영-이동국-차두리 또는 정경호-박주영-이동국이라는 새로운 3톱으로의 전환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박주영이 다시 선발로 투입될 것이라는 점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타슈켄트(우즈벡)= 김명식 스포츠투데이 기자 pa@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