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4일 후지쓰배를 3연패한 이세돌 9단. 사진제공=사이버오로 | ||
자신의 여섯 번째 세계타이틀인 동시에 6연속 우승이다. 2002년 8월 제15회 후지쓰배부터 2003년 3월 제7회 LG배, 같은 해 7월 제16회 후지쓰배, 2004년 12월 제9회 삼성화재배, 올 1월 제2회 도요타덴소배, 그리고 이번 후지쓰배까지다. 세계 무대에 나가 일단 결승에만 올라가면 모두 우승했다는 얘기다. 가히 국제전의 사나이다.
최철한과 결승을 다툰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두 사람은 권갑룡 7단 도장에서 같이 공부한, 동문 선후배다. 권 도장 시절에도 이세돌은 튀었다.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사범님’인 권 7단은, 다른 아이들에게는 무수히 잔소리를 하면서도 이세돌은 방목했다. 잔소리를 한다고 공부를 열심히 할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간파한 데다가, 그의 재주를 믿었던 탓이다. 권 7단은 과연 노련한 조련사였다.
그랬던 이세돌이 바둑에 재미를 느끼고 바둑 공부에 취미를 붙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최철한 덕분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세돌에게 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최철한은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면서 이세돌의 투지에 불을 붙여 주었다.
지금 한국 바둑계의 중심에는 이세돌이 있다. 이세돌은 말하자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다. 위로는 이창호 9단(30) 한 사람뿐이고, 이창호를 제외한 한국 프로기사 모두가 이세돌 아래에 있다. 한국 프로바둑의 오늘과 내일을 말해 주는 다양한 사진들에는 모두 그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현재로선 한국 바둑계, 나아가 세계 바둑계 판도 변화에 대한 모든 진단과 담론의 키워드가 이세돌이다.
이세돌은 1995년 입단할 때부터 ‘비금도의 천재 소년’으로 주목을 받았다. 입단 후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성장해 2000년 시즌에는 공식 대국 32연승의 눈부신 기록과 함께 국내 타이틀 2개를 따냈다. 그의 이름이 ‘포스트 이창호’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듬해 2001년에는 제5회 LG배에서, 부동의 지존 이창호와 결승5번기를 벌였다. 먼저 2승을 올렸다. 센세이션이었다. 그러나 석 달 후에 벌어진 나머지 세 판의 승부에서 모두 져, 2승3패로 물러났다. 돌이켜보면, 생각할수록 이게 묘하다. 석 달의 시차가 아니었더라면, 선제 2승의 기세가 살았을 것이고, 이때 이세돌은, ‘이창호를 꺾고’ 세계타이틀 홀더가 될 수도 있었다.
주최-진행측에서 강자 어드밴티지를 적용해, 이창호가 컨디션 조절의 시간을 벌 수 있도록 배려해 시차를 둔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형편과 정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차만이 아니었다. 석 달 사이에, 이세돌은 뜻하지 아니한 구설수에 오르는 곤욕을 치렀다. 건방지다. 예의가 없다. 어린 나이에 돈을 밝힌다. 당시 열여덟 풋내기였던 이세돌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마음의 상처가 작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건방지게 행동한 것도, 예의 없이 군 게 전혀 없었다. 돈을 밝힌다는 것은 더구나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이세돌은 그저 천성대로 행동한 것이었는데, 그게 오해를 불렀던 것뿐이었다.
▲ 최철한 9단과의 결승. | ||
그로부터 4년쯤이 흘렀다. 세월은 빠르다. 그 사이에 이세돌은 이창호를 넘어 정상을 밟았던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시간은 충분했고, 기량도 더 향상되었을 것이고, 이창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냈을 것이니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그를 ‘확실한 차기 대권’으로 지목하고 있었지만, 이세돌이 100% 확실한 것을 보여 주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세돌은 이번 후지쓰배 우승으로, 세계 타이틀 보유 숫자에서, 마침내 이창호를 3 대 2로 앞지르게 되었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다시 한 번 이창호 극복의 서곡을 들려준 셈이다.
그러나 이세돌은 현재 국내 타이틀이 없다. 세계 타이틀도 이창호와 겨루어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판단은 여전히 유보되며, 우리들은 여전히 헷갈리고 있다. 도대체 이창호와 이세돌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의미에서 누가 과연 앞서 있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이세돌의 최근 언행을 근거 삼아 이세돌은 이미 이창호를 넘어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다.
“그 첫 번째는 자신감이다. 이세돌은, 처음 타이틀 무대에 나올 때부터도 그랬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창호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으며, 언제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이창호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인터넷이나 TV에서 이창호의 바둑을 해설할 때, 다른 사람들은, 이창호의 수에 대해서는,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도 ‘아, 그런가요’ ‘그렇게 두는 수도 있을 것 같군요’ 하는 게 보통인데, 이세돌만은 다르다. 이창호의 수에 대해서도 잘 둔 수, 잘못 둔 수를 분명히 꼬집어 말한다. 이창호의 바둑을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일리가 있다. 그들은 이런 말도 들려준다.
“이세돌 본인의 얘기로는, 자신의 바둑은 2001년 이창호와 LG배를 다툴 때, 그 무렵이 지금보다 더 강했던 것 같다, 향상된 것이 있다면 그때에 비해 많이 노련해진 것뿐인 것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오히려 퇴보해 있다는 얘기인데, 그럴 리는 없을 것이고, 그때 실력에서 크게 더 향상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일말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등 뒤에 최철한 박영훈 원성진 송태곤 등의 후배들이 있다. 그들은 이창호와 이세돌 둘 다를 겨냥하고 있다. 유유자적한 4년의 시간이 결정적 순간에 치명적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그들 뒤에도 또 있다. 이영구 백홍석 윤준상 김지석 등이다. 이 중 김지석은 이제 겨우 열여섯 살. 어릴 때 ‘광주의 바둑신동’으로 소문을 뿌렸던 재목이다. 이세돌도 김지석을 꼽고 있다. 이세돌이 앞으로도 당분간 이창호와 그저 그런 사이로 계속 나간다면, 이세돌은 최철한 박영훈 송태곤 등과 함께 과도기의 스타 군단으로 흘러가고, 정작 이창호로부터 바통을 넘겨받는 사람은 윤준상이나 김지석 세대에서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창호가 최근 지는 일이 잦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이창호의 깊은 속을 다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점에서도 이창호와 이세돌은 닮았다. 분방한 이세돌은 과연 어디로 튈까.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가 있다. 이세돌이 ‘다빈치 코드’라면, 이창호는 ‘길 없는 길’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