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시즌 ‘FA대박’을 터뜨리며 삼성으로 이적한 심정수는 국세청의 36% 과세방침에 따라 20억원의 계약금에 대해 최고 7억원에 이르는 세금을 내야한다. | ||
국세청이 최근 자유계약선수들이 FA계약을 체결하며 받는 계약금을 기존의 기타소득에서 일반 사업소득으로 바꿔 중과세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 그동안 계약금 등의 소득이 기타 소득으로 인정돼 최대 80%의 필요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 20%에 대해서만 과세되는 것이 아니라 36%의 고세율이 적용돼 선수들의 금전적인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된 셈이다.
국세청은 공식적으로 “바뀐 세율 적용 사실을 선수들에게 알린 적이 없다”고 부인하지만, 일부 선수들을 통해 국세청이 세율 변경 적용 사실을 직접 통보한 사실이 알려지고 있고, 심지어 FA대박을 터뜨린 한 유명 선수의 경우에는 이미 1억5천만원이 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납부했다는 사실까지 전해지면서 8개 구단 선수들은 물론, 구단 관계자들도 크게 동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국세청은 이 규정을 FA계약이 시작된 2000년부터 소급적용할 것으로 보여 각 구단 관계자와 선수들은 대비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양새며 심지어 몇몇 선수들은 국세청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중 일부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세법상 자유직업 소득자다. 곧 계속적으로 소득이 일어나지 않는 직업군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간 프로야구 선수들의 계약금은 사업소득이 아닌 기타 소득으로 인정됐다. 따라서 구단에서 지급하는 계약금 중 최대 80%까지 필요경비로 인정됐으며, 이를 제외한 20%에 대해서만 소득으로 인정하여 과세되어 왔다.
이러다보니 선수들은 5월 종합 소득신고 기간만 되면 필요경비(소득세의 과세 계산에서 공제되는 경비)를 계약금의 80%까지 늘리기 위해 분주히 뛰어 다닌다. 일반인들이 연말 소득공제를 위해 필요한 서류와 1년간의 영수증을 정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
세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또한 1년 내내 경기를 치러야 하는 선수들, 특히 고액 연봉자나 FA계약 선수들의 경우에는 필요 경비 책정에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개인 세무사를 고용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인정되는 필요경비는 의외로 다양하다. 우선 프로야구 선수들의 주거비용과 이동 경비는 모두 필요경비로 인정된다. 따라서 거액의 FA계약금을 받은 선수들이 우선적으로 하는 것은 내 집 마련이다.
주택 마련 비용은 모두 필요경비로 책정돼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박찬호가 LA 베벌리힐스에 1백97만달러(약 2백억원)에 달하는 대저택을 구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차량 구입비 또한 이동 경비로 인정돼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 선수들이 대부분 최고급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봉이 많고 적음을 떠나 1억원을 호가하는 외제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세금 문제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체력 단련 비용 또한 필요비용으로 인정되는 중요한 항목이다. 기초 체력을 위해 선수들이 먹는 보양식 구입비, 체력 단련을 위한 헬스장 이용료 모두 과세 제외대상이다. 장어즙, 뱀, 녹용 등 최고급 보약을 복용하는 선수들은 1년 동안 몸보신에 지출하는 비용은 최소한 1천만원을 훌쩍 넘긴다.
또한 체력 단련을 위한 개인전속 트레이너 고용, 최고급 헬스장 이용비용까지 더하면 세금 감면액은 더욱 커진다. 물론 이에 대한 영수증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당연지사. 대부분의 서류는 세무사가 처리해 주지만 증빙 서류나 영수증을 챙기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불우이웃 돕기나 재단 기부 역시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다.
이밖에도 선수들이 경기 때 사용하는 각종 장비의 구입비용, 팬들을 위해 제공하는 사인볼 및 기념품 구입비용 또한 필요경비 처리가 가능하다. 각종 접대비는 물론 회식비 등도 필요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중 기본 장비 구입비용과 팬들을 위한 기념품, 시즌 중 이동 비용 등은 구단에서 지급하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특혜가 아니냐고 지적한다. 국세청이 선수들을 사업소득자로 분류, 고액 계약금에 대해 36%의 과세를 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일단 국세청의 세율 인상에 대해 선수협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선수들은 일반 사업 소득자에 비해 비용 처리할 부분이 적어 장비구입비나 보약 값 등을 세무당국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더욱이 연봉과 계약금 소득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세금 납부액을 따져보면 실제로 적게 내는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세청은 “프로선수들과 같이 거액의 계약금을 받는 연예인들의 경우도 기획사 전속계약금에 대해 사업소득으로 인정된 대법원 판례가 있고, 프로야구 선수들에게도 과거부터 계약금 등의 액수가 일정 수준이 넘으면 36%의 과세를 해왔다”면서 “과세 방식의 변경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최혁진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