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선수 강수연 | ||
강수연을 깊게 이해하려면 ‘두 명의 강수연’으로 나눠 살펴봐야 한다. 구분의 근거는 2001년 미국 LPGA 진출. 단순히 뛰는 무대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2001년을 기준으로 강수연은 투어는 물론이고 가정환경, 정신자세 등에서 정말이지 많은 것이 변했다.
강수연의 부친 강봉수씨는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한때 주먹세계에 몸담기도 했지만 서울 강남에 대형 카바레를 소유·운영할 정도로 사업가로 성공했다. 남다른 친화력을 발휘해서인지 주변엔 늘 사람들이 들끓었다. 그들은 모두 강봉수의 딸 강수연을 응원했고 골프계에서는 그들을 가리켜 ‘강봉수 사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스폰서도 프로데뷔 이후 줄곧 삼성이 맡아올 정도로 강수연은 남부러울 것 없는 선수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강수연의 미국 진출 때부터 부친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카바레는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갔고, 그 많던 돈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전의 강수연이 집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 이제는 강수연이 집안을 먹여 살려야 되는 형편이 된 것이다.
사업이 부도를 맞을 정도로 크게 기울면서 강봉수씨는 검찰수사까지 받았다. 바로 이때 ‘탄원서’가 등장한다. 강수연은 A4용지 네 장을 빼곡히 채운 절절한 내용의 탄원서를 담당검사 앞으로 보냈다.
‘프로골퍼 강수연입니다. 아버지가 형사적으로 잘못했을지라도 제게는 골프를 가르쳐 주신 너무도 소중한 분입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기니 골프도 잘 되지 않습니다. 부디 선처해 주십시오….’
꼭 이 탄원서 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다행히도 탄원서를 보낸 후 얼마 안돼 강봉수씨는 풀려났고, 지금은 사업 재기에 한창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강수연의 정신 자세도 달라졌다. 부잣집딸에서 ‘가장’이 됐으니 골프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연습도 더 열심히 했고, 정신력도 강해졌다. 샷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다.
강수연을 잘 아는 한 골프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강수연이 한국에서 거둔 많은 우승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워낙 좋은 조건에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아가면서 달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도 현장을 지키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힘으로 우승한 걸 보니 이제 강수연이 정말 천재 골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스포츠투데이 골프팀장 einer@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