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히딩크 감독, 코엘류 감독, 본프레레 감독 | ||
축구협회의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일처리가 도마에 오른 적은 많지만 본프레레 감독 후임 인선과정에서 보여주는 실수들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연상하게 한다. 메추 감독 영입과정에서 국제적인 망신을 샀던 축구협회의 ‘감독 찾아 3만리’의 실수투성이 여정을 따라가 봤다.
가삼현 축구협회 대외협력국장은 9월5일 밤 UAE 두바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표면적으로는 9일 모로코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회의에 참석하려는 목적이지만 예정보다 이틀이나 먼저 출국한 이유는 감독 후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특히 후임 감독 영순위로 떠오른 아드보카트 UAE대표팀 감독, 핌 베어벡 수석코치와 만나 한국행 협상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협회 고위관계자는 8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 국장이 아드보카트와 사전에 어느 정도 조율하고 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냥 얼굴이나 보러 가지는 않았다. 잘 되면 하루 이틀 새 협상이 끝날 수도 있다”며 아드보카트로 거의 굳어진 것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이는 하루 만에 뒤집어졌다. <스포츠조선>은 9일자에서 “아드보카트는 취임 뒤 6개월간은 최소한 UAE에 머물러야 하는 것으로 에이전트가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아드보카트가 7월18일 UAE대표팀을 맡았기 때문에 빨라도 내년 1월에야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할 수 있다는 것.
결과적으로 대한축구협회는 영입하려는 후보가 최소한 현직을 떠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우를 범했다. 이 과정에서 UAE축구협회는 대한축구협회의 무례한 일처리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새로 감독을 데려오자마자 한국에서 감독을 빼가려 하니 기분이 좋을 리 만무할 것이다.
UAE축구협회 모하메드 두한 사무총장은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한국의 무례함에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다”고 털어놨다. 거꾸로 본프레레 후임으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했는데 유럽의 한 나라에서 신임 감독과 몰래 접촉했다면 대한축구협회는 가만히 있겠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셈이다. 또 아드보카트의 에이전시가 히딩크 쿠엘류 본프레레 감독 등을 한국에 데려온 영국의 스포츠마케팅 회사인 캄(KAM)인 점을 감안한다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정도로 일처리가 초보적이다.
캄은 10년여간 한국대표팀의 국가대표간 친선경기를 독점적으로 연결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회사다. 일부에서는 캄과 대한축구협회의 관계에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캄은 지난해 ‘메추 파동’ 때에도 UAE 현지에서 메추와 협상을 벌였지만 메추에게 휘둘렸던 전력이 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어찌 된 일인지 꾸준히 캄에게 감독 선임과 A매치 주선의 독점적인 권한을 주고 있다.
아드보카트와 함께 UAE대표팀 수석코치를 맡고 있는 핌 베어벡은 최근 에이전트를 캄으로 바꿔 ‘아드보카트-핌 베어벡 조합’의 사전 내정설에 무게감을 더했다. 핌 베어벡이 한국에 오지 않으려 했다면 굳이 에이전트사를 캄으로 옮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아드보카트-핌 베어벡 사전 내정설에 ‘확인 사살’을 가하는 듯한 일도 생겼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비엘사 감독은 후보군들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비엘사 감독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 그런 상태에서 후보로 올려놓다니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뛰었다.
‘축구야당’으로 불리는 축구연구소의 김덕기 사무총장은 “캄이 축구협회의 비자금 창구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들린다”며 캄과 축구협회의 유착에 검은 거래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축구협회는 감독 선임을 비공개로 한다고 했지만 기술위원회 위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흘렸다. 철저하게 비공개원칙을 지키려면 대외창구를 단일화하고 입단속을 해야 했지만 지켜지지 못하고 사실상 공개적인 감독 후보 찾기가 됐다.
하지만 축구협회의 태도는 안이하기만 하다. 축구협회측은 “기술위원들이 축구만 해왔던 분들이고 순수해서 속마음을 숨기지 못한다”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식을 하고 있다.
역시 캄 소속이었던 본프레레의 후임으로 캄 소속의 감독이 정말 온다면 대한축구협회는 사전 내정설과 엉성한 행정처리에 대한 팬들의 비난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