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의 사나이’ 박재홍은 지난해 부진을 떨치기라도 하듯 SK에서 연일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올시즌 7년 만에 10승 고지에 복귀한 ‘어린왕자’ 김원형이 지나가자 배칠수씨가 한 마디 거든다. “올해 너무 잘하시는 거 아녜요?” 잠시 후 지난 번 ‘생생인터뷰’에서 맛깔스런 입담을 선보인 이호준이 등장했다. 갈색으로 염색한 헤어스타일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야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마지막 타자,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박재홍의 눈은 잠이 덜 깬 듯했는데 인터뷰가 시작되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배칠수(배): 어이쿠, 안녕하세요. 손차훈 매니저가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해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왜 이렇게 늦게 나오십니까? 야구할 때는 번개같이 뛰면서.
박재홍(박): 죄송해요. 몸이 많이 피곤해서 좀 잤어요. 드디어 제가 배칠수씨랑 인터뷰를 하네요. 지난 번 이호준 인터뷰 때 ‘쪼깨’ 질투가 나긴 했었는데 하하.
배: 지금 농담을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다른 말을 못하겠어요. 하여튼, 올해 오랜만에 가을에도 야구를 하게 됐어요?
박: 아닌데. 기아에 있을 때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가을에 야구했었는데요?
배: 기아는 야구했지만 박재홍 선수는 주로 벤치에서 쉬는 시간이 많았잖아요.
박: 이거 인터뷰 내용에 ‘송곳’이 많은데요? 하하. 잔여 게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최선을 다해 뛰고 있습니다.
배: 오늘 타율을 보니까 2할9푼9리네. 3할을 코앞에 두고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라 몇 개 더 쳐야 하겠어요.
박: 정말 정곡을 찌르시네요. 저에 대해 조사 많이 하셨나 봐요?
배: 어제 밤 새웠습니다. 1996년 데뷔 첫해 홈런 30개, 108타점을 기록하며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타이틀을 차지했잖아요. 이 기록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이라고 하던데요?
▲ 박재홍 선수(왼쪽)와 배칠수 | ||
배: 그러게요. 지금도 그렇고 유난히 기록과 관계가 깊어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요?
박: 아무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면 돼요. 더 정확히 얘기해서 덤덤한 상태가 되면 어느새 공이 펜스를 넘어가 있고 어느새 1루에서 2루로 베이스를 훔치기도 하죠.
배: 광주일고 출신이잖아요. 광주일고 출신들이 야구를 잘하는 특별한 이유가 뭘까요? 한두 명도 아닌데 말이죠.
박: 맞아요. (광주)일고 출신들이 잘 하긴 잘 해요. 우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일제시대 때 전라도에 쇠말뚝을 박지 않아서 기가 세다고 하더라구요. 전 어렸을 때부터 훌륭한 선배들이 잘 해나가는 걸 보고 자라서 그걸 흉내내고 닮고 싶어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약간은 비슷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배: 지난해 기아로 트레이드된 후 좀 힘든 시간을 보내셨죠? FA 앞두고 게임 수 부족으로 FA 재수를 하게 됐어요.
박: 12게임이었어요. 12게임에만 출전했어도 FA가 될 수 있었죠. 손바닥 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하는 바람에 지장을 많이 받긴 했지만 욕심 같아선 게임 뛰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출장 여부는 감독님의 판단이라 어쩔 도리가 없잖아요. 결국 SK로 트레이드됐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봐요.
배: 선두타자로 나와서 홈런 치는 확률이 꽤 높아요. 왜 그렇죠?
박: 선두타자는 무조건 출루를 해야 하니까 노리고 달려들 때가 많아요. 안타 치고 나가는 것보다 홈런 치고 나가서 점수까지 올린다면 더 좋겠죠.
배: 얼마 전 임선동 선수의 결혼 소식이 들리던데 두 분이 친구잖아요. 박재홍 선수는 언제 결혼해요?
▲ 박재홍 선수 | ||
배: 올해 잘 하고 계시잖아요.
박: 그래서 내년쯤에는 여자를 사귀어서 그 다음 해에 결혼해 보려구요. 애인요? 어휴 진짜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해도 사람들이 잘 안 믿어요. 배칠수씨가 좀 도와주세요.
배: 하하. 겉모습과는 달리 귀여운 면도 있으시네. 제가 박재홍 선수보다는 나이가 ‘쪼금’밖에 많지 않은데 전 벌써 애가 유치원다니고 있거든요. 박재홍 선수, 오늘 보니까 참 괜찮은 신랑감 같아요. 돈 잘 벌지, 야구 잘 하지, 잘 생겼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네. 참,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가장 자신을 힘들게 했던 투수가 누구예요? ‘쥐약’이나 다름없었던 선수요.
박: 신인 때 유독 기아의 이강철 선배 볼에 적응이 안됐어요. 아니 그 선배의 공이 너무 싫었어요. 볼이 휘거나 아니면 삼진만 거푸 잡아내는 바람에 망신을 톡톡히 당했죠. 정말 그 당시 선배의 볼을 칠 수가 없었어요.
배: 어이쿠, 선수들 훈련 나가네요. 빨리 뛰어가세요. 오늘 ‘번개 인터뷰’ 감사하구요, 여자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한번 만나서 진지한 토크를 나눠보자구요. 박재홍 선수, 한국시리즈에서 꼭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