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구름’을 걷어낸 ‘서니’ 김선우의 내년 시즌 활약이 기대된다. | ||
국내에도 잘 알려진 콜로라도 투수 김선우(28)의 별칭이다. 미국 내에선 ‘선우(sun woo)’보다는 오히려 ‘서니’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인물. 하지만 이 이름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주인공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지 못했다. 이름과는 정반대로 그의 메이저리그 역정은 늘 컴컴하고 잔뜩 흐린 날씨에 가까웠다. 올 시즌 김선우는 코리안 메이저리거 중 가장 큰 고난을 뚫고 일어섰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다.
보스턴-몬트리올(워싱턴)을 거치며 ‘성장할 투수’란 인식을 주는데 실패했고, 결국 서쪽행 비행기를 타고 콜로라도로 이동해야 했다. 98년 미국 진출 이후 지난해까지 김선우가 올린 총 승수는 올해(6승3패)와 비슷한 7승(9패)이란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만큼 힘든 시절을 견뎌냈다는 방증이다. 지난 9월30일 시즌 고별전인 뉴욕 메츠전을 마친 김선우를 만나봤다.
미국 진출 전까지 김선우의 야구 인생은 ‘서니’ 그 자체였다. 1977년 인천에서 태어난 김선우는 휘문고-고려대를 거치며 아마추어 최고의 투수로 각광받았다. 휘문고 시절에는 청룡기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팀을 정상에 올려놓으며 ‘초고교급 투수’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다. 94년 청소년대표로 캐나다 대회에 출전, 당시 삼성의 이승엽 등과 함께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 국가대표로 태극 마크를 달고 활동했다.
서울에 연고권을 둔 국내 프로야구 양 구단의 ‘러브콜’도 치열했다고 한다. 95년 고졸 우선지명을 앞두고 LG와 OB(현 두산)는 사력을 다해 김선우 잡기에 나섰으나, 결국 김선우는 고려대 유니폼을 입었다.
“보스턴과는 95년 당시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야구대회에 참가했던 게 인연이 됐어요. 결국 고려대 2학년이던 지난 97년 11월 국내 최고 계약금(1백30만 달러)을 받고 보스턴에 입단할 수 있었죠.”
3년 이상 기나긴 마이너리그 생활을 마친 김선우는 2001년 6월에야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이후 계속 마이너리그를 오가던 김선우는 결국 2002년 7월 몬트리올로 트레이드됐다. 하지만 몬트리올행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투수력이 약한 팀이었는 데다 프랭크 로빈슨 감독은 같은 유색인종인 김선우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김선우를 평가절하하며 “마이너리그에서나 통할 구위”라며 독설을 퍼부은 것. 가뜩이나 잇단 불운에 위축돼 있던 김선우로선 어깨에 힘이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빈슨 감독의 구박은 워싱턴으로 연고지를 옮긴 후까지 계속됐어요. 그러더니 저한테 방출 통보라는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더군요. 한 시즌 최다승(4승) 속에 2005시즌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던 상황이라 더욱 암담했어요. 그동안 제 기량을 맘껏 보여줄 기회가 없어서 타 팀의 관심도 끌지 못했거든요.”
절망 속에서 보낸 지난 겨울. 국내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입단설까지 나돌던 시점이었다. 김선우는 결국 초청 선수라는 불확실한 신분으로 플로리다에서 열린 워싱턴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적지 않은 나이, 캠프 후의 기약이 전혀 없는 암흑의 시기였다. 결국, 김선우는 가까스로 워싱턴 잔류에 성공했지만, 또 다시 시즌 중 지명할당 조치 속에 콜로라도 유니폼을 입었다. 이 바람에 김선우는 졸지에 가족과 헤어져 홀아비 신세로 전락해야 했다.
▲ 김선우 선수 | ||
“병현이 도움을 아주 많이 받았어요. 임시 거처로 병현이 집에서 신세를 지며 24시간을 붙어 지내는 동안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죠. 병현이와는 클럽하우스 라커도 바로 옆자리였고 그라운드 캐치볼로도 호흡을 맞춰갔어요. 그러다보니 서로의 투구폼에서부터 사소한 습관까지 일거수 일투족이 조언의 대상이 됐죠.”
마침 올 시즌을 포기한 콜로라도는 내년 시즌을 이끌 선발진을 급구하고 있었다. 한결 자신감을 가지고 덤벼드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동안 맘껏 펼치지 못한 엄청난 잠재력이 그의 어깨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 지난 9월25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전서 올린 콜로라도 역대 최소 피안타 완봉승의 신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김선우는 누구 못지않은 성실함과 자질을 갖춘 투수. 뿐만 아니다. 곱상한 외모와는 딴판으로 마운드 위에선 저돌적이다. 김선우는 현지 취재진의 영어 인터뷰를 제대로 소화해낼 만큼 영어 실력도 뛰어나다. 솔직함은 김선우의 가장 큰 장점. 웬만하면 피해가고 싶은 질문에도 결코 거리낌 없이 대답을 한다.
9월30일 뉴욕 메츠와의 시즌 고별전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5이닝 7실점으로 무너진데 대한 안타까움을 “왜 꾸준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느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그는 “타석에서 번트 실패가 계속 생각이 나서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이런 걸 보면 난 아직도 어린애 같다”며 웃었다.
김선우의 통 큰 야구를 엿보게 하는 또 한 가지. 김병현의 조언 속에 집중하고 있는 투구폼 변형(가진 힘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새로운 폼)이 바로 그것이다. 투수에게 시즌 중 투구폼 변경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민감한 투수로선 조금만 변해도 자칫 혼란의 늪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 하지만 김선우는 옳다고 판단된 새 폼에 ‘올인’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특히 콜로다도 이적 후 생애 첫 선발 테스트를 받고 있던 중이라 이는 더더욱 큰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김선우는 “잘 던지다가 집중타를 맞는 이유는 새 투구폼이 완전치 않아서다. 사실 중요한 (테스트) 시기에 이런 시도를 하는 게 좀 위험하긴 한데 길게 보면 이 선택이 옳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올해보다 내년 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김선우가 쓰라리고 흐린 과거를 경험해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곱씹으며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김선우의 앞길에 눈부신 햇살이 깃들고 있다.
정현석 스포츠조선 미국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