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약혼녀인 재일동포 2세 박리에씨와 함께 LA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일보 | ||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막막했다. 한결같이 “잘 모르겠다”였다. 재일동포 사회를 어우르고 있는 민단 관계자들조차 “언론 보도를 통해 결혼소식은 알고 있지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재일동포 재력가의 딸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도쿄에서 박씨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리에씨의 아버지이자 박찬호의 장인이 될 박충서씨(62)가 운영하는 부동산회사 주오(中央)토지(주)에 전화를 돌렸다. 비서의 대답은 간결했다. “출장중입니다. 전화번호를 남기시면 사장님이 연락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회사인지를 묻자 “응답하기 곤란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東洋)경제>가 발행한 2006년판 시키호(四季報) 미상장회사 일람을 살폈다. 증시에 상장은 되어있지 않지만 일본 내에서 알아주는 유력한 중견기업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부동산 부문에 주오토지가 실려 있었다.
회사설립일은 1947년. 자본금 1억엔(약 10억원)에 종업원은 16명. 대표이사는 가쓰다 다다오(勝田忠緖)로 돼 있다. 박충서씨의 일본 이름이다. 외견상 소기업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주오토지는 종합부동산회사다. 주업무는 도쿄 중심부인 지요다(千代田), 주오(中央), 미나토(港)구 등을 중심으로 한 사무실 및 맨션 매매·임대다. 이를 위해 현재 빌딩 19개, 맨션 16개를 보유하고 있다. 2004년 말 기준 매출액은 49억9천6백만엔, 순이익은 10억2백만엔으로 기록돼 있다.
주오토지는 박리에씨의 할아버지인 박용구씨가 세운 회사로, 79년 장남인 박충서씨가 대표이사를 물려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할아버지 박용구씨는 재일교포 사회에서도 명망이 높은 인물이다. 고향은 충청도. 해방 전에 일본에 건너온 뒤 갖은 고생을 하다 전후 피폐해진 도쿄에서 부동산업을 시작해 자수성가했다. 그리고는 67년 재산 중 일부를 떼어 내 재단법인 ‘박용구육영회’를 설립했다. ‘가진 것 없는 나라’ 한국에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은 배움뿐이라는 이유에서 만든 장학 재단이다.
이 때문에 장학금 지급대상도 재일교포 자녀들보다는 배고픈 한국 유학생들에게 집중됐다. 현재도 매년 석·박사 과정의 한국 유학생 25명에게 매월 7만엔씩 연 84만엔을 지급하고 있다. 육영회 관계자는 “지난 30여 년간 장학금을 받은 이들은 2천여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장학금 수혜자 가운데는 전두환정권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허문도씨도 포함돼 있다. 허씨는 서울대 졸업 뒤 도쿄대학원에 유학, 이 육영회의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다. 박용구씨는 이 장학사업으로 1995년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지난 10일. 지인 A씨로부터 ‘며칠 전 박충서씨를 만났다’는 흥미로운 제보가 들어왔다. 업무상 만남이었기 때문에 만난 시간은 길지 않았다고 했다. 우선 박충서라는 인물 얘기부터 전해들었다. A씨에 따르면 박씨는 일본에서 태어난 뒤 게이오(慶應)대 정치학부를 졸업했다. 한국어도 가능하지만 일본어로 얘기하는 게 더 편안하다고 말할 정도로 솔직하다. 체격은 크고 호인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박씨는 이날 사위 얘기는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박찬호가 사위가 된다는 것에 매우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박씨는 “든든한 사위를 보게 돼 좋겠다”는 A씨의 덕담에 “사위가 운동선수로서 역할을 하려면 먹는 게 중요한 데 다행히 딸이 요리학교를 나와 잘 보살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가족 사진을 보여주면서 “딸의 키가 172㎝다. 체격은 나를, 얼굴은 엄마를 닮았다”고 했다. A씨는 “사진을 보니 딸과 어머니가 정말 닮았다”고 전했다. 리에씨의 어머니는 정씨 성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박리에씨에 대한 인적사항은 미국 요리학교 CIA의 동창회 회보에 가쓰다 리에(勝田梨惠)라는 일본명으로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CIA는 1964년 설립된 요리학교다.
경력은 3단계로 돼 있다. 우선 1998년에는 ‘조지(上智)대 문학부 졸업, 미 CIA 입학. 프랑스 요리를 기초로 세계 각국의 요리, 제과, 제빵, 와인학, 레스토랑 경영학 등을 배우다’라고 쓰여 있다. 2000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리옹의 레스토랑 ‘삐에르 오르시(Pierre Orsi)’에서 5개월간 공부한 뒤 귀국, 도쿄의 자택을 개방해 소수 전용의 심플 프렌치 요리 교실을 연 뒤 다시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아 쉐 파니스(Chez Panisse) 레스토랑에서 3개월간 인턴 생활을 한 것으로 되어있다. 2001년에는 일본에서 프렌치 요리교실을 다시 열고, <음식점 경영>이라는 월간지에 음식과 관련한 칼럼 등을 연재했다. 서울에서도 ‘카페 마실’의 메뉴 개발, 도쿄 중심부 시부야의 ‘B&B 키친’에서 조리 지도 및 메뉴 개발을 담당한 것으로 되어있다.
박찬호와 리에씨가 처음 만난 것은 1년 반 전쯤 지인의 소개가 계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씨 집안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내성적인 성격의 찬호가 단정하고 차분한 리에에게 빠졌고, 리에 역시 찬호의 진솔함에 마음이 끌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리에씨 집안에서는 당초 스포츠 스타에 대한 부담감도 적지 않았으나 박찬호의 성실성에 결혼을 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의 만남은 현해탄과 태평양을 넘나들며 이뤄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박찬호가 도쿄를 찾을 때면 리에씨는 집으로 초대, 프랑스 요리를 직접 만들어 사랑을 전할 정도였다. 리에씨를 잘 안다는 한 재일교포는 “리에의 성격은 차분하고 예의 바르다”며 “요리의 절반이 정성이라는 말처럼 마음도 따뜻하다”고 말했다.
박충서씨와 리에씨는 일본인명은 갖고 있지만 귀화는 하지 않은 상태다. 사실 차별사회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박씨 집안 관계자는 “돌아가신 리에 할아버지께서 늘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해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박찬호·박리에 커플은 오는 29일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다. 하객들은 극소수로 제한된 상태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12월 한국과 일본에서 연이어 피로연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측 피로연은 12월19일 도쿄 데이코쿠(帝國)호텔을 예약한 것이 확인됐다.
박용채 재일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