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2006 국제빙상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를 차지한 김연아가 지난 29일 귀국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만 15세 2개월의 김연아(도장중3). 엄마 손에 이끌려 일곱 살 때 처음 빙판에 선 어린 소녀는 지금 한국피겨 98년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주니어들의 ‘왕중왕전’인 2005∼2006국제빙상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2위를 30점차로 따돌리고 우승한 뒤 “점수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고 했다니 대단한 승부근성이 아닐 수 없다.
새 스케이트화 신고도 우승
“점프할 때 폼이 자꾸 흐트러지네.”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엄마와 코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폼이 예전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김연아의 무릎과 허리에도 통증이 찾아왔다. 엄마는 딸의 몸에 이상이 왔다고 생각해 척추교정까지 받도록 했다. 하지만 척추에는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스케이트화였다. 오른쪽 신발의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쏠려있었다. 스케이트화에 따라 점프의 각도 등이 좌우되는데 김연아는 무게 중심이 기울어진 신발을 신고도 꾹 참고 지난 9월 주니어 그랑프리 5차대회 우승까지 이뤄내고 있었다. 몸에 무리를 준 스케이트화를 당연히 교체해야 하지만 시기가 걸림돌이었다. 보통 새로운 스케이트화에 적응하는 데 한 달 이상이 소요되는데 스위스에 서둘러 주문해도 대회 2주전에나 신발이 도착하기 때문이다. 결국 부상방지를 위해 스케이트를 바꾸는 모험을 했다. “연아는 신발이 맞지 않아도 몸으로 때우는 애”라는 엄마 박미희씨의 말처럼 김연아는 길들여지지 않은 신발을 신고 우승을 일궈냈다. 김연아는 우승 당시의 상황에 대해 “발에 맞지 않아 고생했는데 대회 당일에는 이상하게 발에 딱 맞았다”며 해맑게 웃었다.
늘 곁에서 함께하는 엄마
김연아 곁에는 늘 그림자처럼 엄마 박미희씨가 따라다닌다. 스케이트장도 엄마 손에 이끌려갔다.
박씨는 “재능이 있다는 코치의 말을 믿고 뒷바라지를 한 게 여기까지 왔다. 그동안 연아는 피겨에 전념하느라 수영이나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등도 거의 타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연아가 사춘기를 겪을 때는 훈련장에 늘 같이 다니는 엄마와 갈등이 없지 않았다. 박씨는 “연아가 6학년 때부터 뭔가를 조언하면 잘 따르지 않았다. 그럴 때는 서로 기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연습 때가 되면 연아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1일부터 시작된 대표팀 합동훈련장에도 엄마는 늘 그랬듯이 곁을 지키며 대견함과 안쓰러운 마음으로 딸을 지켜보고 있다.
식성·시차…국제대회 체질
박씨는 딸이 연습벌레인 데다 특히 까다롭지 않은 성격이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박씨는 “가리는 음식이 없다. 해외에 나가면 다른 애들은 한국음식을 싸가느라 바쁘지만 연아는 어느 나라 음식이든 잘 먹는다. 이상하게 시차적응도 잘 한다”고 전했다. 박씨는 “연아가 아빠를 닮아서인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며 43kg의 여린 몸에도 딸이 강한 체력훈련을 견뎌내는 이유를 설명했다.
“후원해 주실 기업 없나요”
국내 및 해외 전지훈련비, 1년에 쓰는 스케이트화 3∼4켤레, 대회 출전시 개인코치 출장비 등 1년에 김연아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7천만원가량이다. 소규모의 금도금 사업을 하는 아빠의 돈벌이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금액. 지난해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준우승해 연맹 지원금과 시도 장학금 등이 나오기 전까지 김연아의 부모는 빚까지 내며 수천만원의 비용을 모두 부담해왔다. 올해 연맹에서 3천만원의 해외전훈 지원금이 나와 미국에 다녀온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일본 등 다른 나라 선수들은 3개월여의 해외전훈과 일류 안무가를 통한 연기지도 등을 거쳐 출전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부족한 돈 때문에 6주간의 짧은 해외전훈에 만족해야 했다. 김연아가 개인스폰서를 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비인기종목이라는 이유로 1년간 스폰서를 구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경쟁자들보다 떨어지는 훈련 여건에서도 우승한 김연아가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다면 성장속도가 더욱 가파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맞수’ 아사다 마오
내년 3월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은 김연아가 적수인 일본의 아사다 마오와 맞대결을 펼쳐 진정한 승자를 가리는 대회다. 마오는 지난해 주니어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한 뒤 시니어대회에 출전하느라 올해 김연아와 대결하지 않았다. 김연아는 지난해 마오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마오는 주니어들이 좀처럼 소화하지 못하는 트리플 악셀(3회전 반)을 선보일 만큼 강자. 피겨의 6개 점프 중 가장 어렵다는 트리플 악셀은 김연아가 매끄럽게 하지 못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김연아는 내년 3월 대회를 자신하고 있다. 엄마 박미희씨는 “연아는 트리플 플립(오른발로 찍어 점프해 3회전), 트리플 토우(왼발로 찍어 점프해 3회전)가 주무기인데 이를 연속으로 하는 ‘트리플 트리플’이 마오보다 강해 굳이 트리플 악셀을 하지 않아도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싸이질’에 푹 빠진 ‘요정’
귀국하자마자 “‘싸이’를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김연아는 싸이월드에 푹 빠져있다. 귀국 후에는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대회 기간에 찍은 사진들을 대거 올려놓았다. 치솟은 그의 인기를 반영하듯 하루 동안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들만도 수백 명에 이른다. 최근엔 한 의류업체의 지면광고 모델 제의를 받기도 했다. 아직 어리기만 한 김연아는 이런 변화가 신기한지 자신의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방명록에 글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리플달기 어려워요. 이해해 주세요ㅋ. 축하해주셔서 모두모두 감사합니다”라고 적어놓았다.
송호진 스포츠 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