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구계의 마당발로 소문난 전창진 원주 동부 감독(오른쪽)과 허재 전주 KCC 감독. | ||
그러나 허 감독을 잘 아는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현역 시절부터 유명했던 허 감독의 카리스마와 친화력이라면 제 아무리 세계적인 메이저리그 스타라도 고개를 굽히고 이내 ‘형님’으로 모시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 좋고 화통하기로 유명한 허 감독. 특유의 성격 탓에 농구판의 알아주는 ‘마당발’로 통하는 허 감독이지만 올 연말은 조용히 지낼 예정이다. 불러주는 자리도 많고, 얼굴을 비쳐야 하는 자리가 줄을 섰는데 올해는 무엇보다 KCC의 성적을 끌어올리는 일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돼야 마당발
우리 사회의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농구판에도 어김없이 주위를 널리 아우르는 유명한 ‘마당발’들이 있기 마련이다. 허 감독이 ‘형님’하며 따르는 사람 중의 한 명이 전창진 원주 동부 감독(42). 실업 시절 삼성전자(현 서울 삼성)에서 은퇴한 후 주무 생활로 시작해 구단 홍보 프런트까지 경험했던 전 감독은 농구단의 세세한 뒷바라지부터 구단 직원들이 맡는 홍보 업무까지 ‘A to Z’를 완벽히 꿰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쌓인 탄탄한 인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 삼성의 안준호 감독도 전 감독에게는 ‘형님’이고, 올시즌 동부로 팀을 옮긴 강동희 코치도 전 감독과의 인맥으로 인해 새로운 길을 가게 됐다. 원주에서는 고기를 먹으러 가도, 찜질방에 샤워를 하러 가도 누구나 아는 사람이고 인사하느라, 인사 받아주느라 바쁜 그이다. 그는 이미 원주, 아니 농구판 전체의 마당발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 추승일 부산 KTF 감독 | ||
농구 선수 중 가장 많은 안티 팬을 보유하고 있는 서장훈(31).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보스 기질이 있다’ 혹은 ‘자기 사람은 확실히 챙긴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서장훈과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측근들은 농구계는 물론 전 체육계와 연예계를 통틀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서장훈과 가수 김건모, 인기 댄스그룹 NRG의 이성진 등이 막역한 사이로 지내는 것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 여기에 한국 최고의 포인트가드 김승현(27·오리온스)과는 몇 년 전부터 둘도 없는 사이로 평소에도 두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통을 붙잡는다.
서장훈의 영향을 받았을까. 김승현 역시 서장훈 못지 않은 인맥을 자랑한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해 막역하게 지내는 몇몇 톱스타들과 예상치도 못했던 스캔들이 나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구의 한 바에서 삼성 라이온스의 간판 투수 배영수(24)와 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이 목격돼 김승현의 종목을 초월한 친화력이 증명(?)되기도 했다.
▲ 지난 4월2일 삼성과 롯데의 개막전에 앞서 시구자인 김승현이 연습하는 모습을 삼성 투수 배영수가 바라보고 있다. 김승현은 배영수와 평소 술을 함께 마실 정도로 발이 넓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스 | ||
국제적으로 노는(?) 마당발도 있다. 지금은 농구부가 해체된 홍익대 출신인 추일승 부산 KTF 감독은 학연 지연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인맥을 이용하기가 힘든 스타일. 추 감독은 남들보다 한발 더 뛰고, 더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며 그러한 자신의 단점을 커버하고 있다. 방성윤이 뛰었던 미 프로농구(NBA) 하부리그인 NBDL 소속팀 로어노크 대즐의 켄트 데이비슨 감독(54)과는 이미 막역한 사이. 데이비슨 감독은 지난 여름 KTF의 미국 LA 전지훈련 기간 내내 KTF의 훈련장에 동참한 것은 물론, 대학을 갓 졸업한 수준급 연습 용병들을 모아주는 등 추 감독과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추 감독은 데이비슨 감독은 물론, 미국의 대학 및 하부리그 팀 감독이나 유명 에이전트들과 전방위적인 인맥을 갖추고 국내 지도자 중 가장 탄탄한 용병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다.
#농구판에선 누구나 형 동생
프로농구판을 처음 접하는 기자라면 적응이 안 되는 점이 있었다. 코칭스태프건, 선수건, 구단 직원이건, 트레이너건, 사석에선 모두가 ‘형’이고 ‘동생’이었던 것. 프로야구, 프로축구와는 달리 프로농구팀은 선수단이라고 해봤자 수련선수를 포함해 15명 안팎, 3∼4명의 코칭스태프와 역시 3∼4명의 매니저, 트레이너, 통역 등을 다 합쳐도 20명을 넘나드는 수준이다. 여기에 구단 직원 역시 한 팀 당 적게는 5∼6명, 많아봤자 10명을 넘기지 않는다. 선수들의 출신 학교와 지역도 한 다리 건너면 모두 다 알 수 있는 수준. 자연스레 서로 가족과 같은 친숙함을 지닐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그렇다 보니 농구 선수들은 다른 프로 종목에 비해 인간관계가 밀접해지고, 서로 친해질 기회도 많아져 너도나도 ‘마당발’이 될 수밖에 없다. ‘마당발’이 되는 것, 끈끈한 인맥을 잘 유지하는 것이 농구판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임을 너도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허재원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