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참석한 김인식 감독. 왼쪽은 WBC 공식 홈페이지.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러나 한화 김인식 감독(58)은 요즘 할 일이 태산이다.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문이다. 김인식 감독은 한국대표팀의 사령탑으로 선임돼 WBC에서 드림팀Ⅶ을 진두지휘한다. 어깨가 무겁다. 가장 최근의 야구대표팀이었던 드림팀Ⅵ가 2003년 11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예선서 대만에 역전패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 망신을 샀다. 처음으로 월드컵 수준의 규모로 치러지는 WBC에서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덕장’ 김인식 감독도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다. 단기간에 최대 전력을 이끌어내 역대 최강의 상대팀들과 승부를 겨뤄야 하는 상황이다.
소프트뱅크의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일본대표팀은 이번 WBC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WBC에서 좋은 성적을 남기면 잠시 주춤거리다 다시 살아나고 있는 자국내 프로리그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이저리그로 상징되는 미국 야구에 꿀릴 것이 없다는 평소 신념을 이번 대회를 통해 입증하고자 한다.
일본은 이미 29명의 대회 출전 엔트리를 확정했다. 뉴욕 양키스의 외야수 마쓰이를 4번타자로 넣기 위해 한자리를 비워뒀지만 마쓰이가 불참을 선언하더라도 대신할 자원은 넘쳐난다. 시애틀의 이치로와 샌디에이고의 오츠카 아키노리 등을 포함해 처음으로 해외파 선수들을 소집했다. 스기우치(소프트뱅크), 마쓰자카(세이부), 우에하라(요미우리), 와타나베(지바 롯데) 등 정상의 투수들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대만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오는 12월19일부터 열리는 첫 캠프를 시작으로 내년 1월22일에 끝나는 4차 캠프까지 참가 가능성이 있는 모든 선수들을 WBC 체제로 훈련시킨다. 내년 2월13일부터 2월26일까지 대만 카오슝에서 열리는 5번째 캠프 때 최종 엔트리 30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찌감치 훈련을 시작할 뿐만 아니라 선수층이 엷은 자국 리그 사정상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전력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반면 한국은 지난 8일 예비 엔트리 60명을 확정했을 뿐이다. 일각에선 준비가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차곡차곡 계획은 잡혀있다. 내년 1월9일 최종 엔트리 30명을 결정하고 난 뒤 2월19일 일본 후쿠오카돔에 캠프를 차릴 예정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시나리오에 따라 한국대표팀은 3월1일에는 재팬시리즈 우승팀인 지바 롯데와 평가전도 갖는다.
일본, 대만, 중국 등과 함께 A풀에 속한 한국은 최소한 대만을 잡아야 미국 애너하임에서 열리는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다. 대만도 뉴욕 양키스의 선발투수 왕치엔밍을 비롯, 일본 리그서 뛰고 있는 A급 투수들을 모조리 불러들일 작정이다. 한때 우습게 여겼던 대만이지만 2년 전 덜미를 잡힌 상황이라 지금 김인식 감독에게 있어선 부담 가는 상대임이 틀림 없다.
이번 대회에선 참가국에게 출전 수당과 순위에 따른 상금이 지급된다. 미국 재무부가 금수조치 국가인 쿠바의 WBC 출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돈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쿠바 선수가 미국에서 돈을 벌려면 별도의 라이센스가 필요한데 재무부가 발급 허가를 반대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김인식 감독이 신경써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 선수들도 우선 예선전이 열리는 일본에서의 취업비자를 마련해야 한다. 김 감독은 “최종 명단을 빨리 확정해야 취업비자 문제를 비롯해 준비가 수월해진다”며 작은 부분까지 신경쓰고 있음을 내비쳤다. 내년 1월9일 최종 명단 발표에 앞서 두세 차례 코칭스태프 미팅을 갖겠다는 것도 일찌감치 전력 밑그림을 확정하겠다는 의도다.
훈련에 대한 기본 개념 자체가 문제다. 일본은 오프시즌 동안 자율훈련이 일반화돼 있다. 미국의 경우 대개 2월 중순인 스프링캠프 리포팅데이에 맞춰 선수들이 스스로 알아서 겨우내 몸을 만든다. 반면 한국 프로리그의 선수들에게 이맘 때는 편히 쉬는 방학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 선수들이 1월 중순 스프링캠프 시작과 함께 운동을 재개한다. WBC 아시아 예선전은 3월 초에 열린다. 그동안의 4월 개막일에 맞춰 몸을 만들던 습관대로 훈련한다면 곤란해진다. 김인식 감독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해외파 선수들의 훈련 장소를 물색해주는 것도 김인식 감독의 몫이다. 샌디에이고 박찬호를 비롯해 해외파 선수들이 국내 구단의 전훈지에서 함께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대표팀이 소집되려면 한참 남았지만 일찌감치 해당 선수들의 컨디션을 체크해나가는 일도 병행할 작정이다.
갈 길은 멀고, 할 일도 태산이지만 김인식 감독은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잘할 것”이라며 주위의 지나친 관심 집중에 대해선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미 2002년에 드림팀을 이끌고 부산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물론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한 상대들과 만나야 한다. 대만을 꺾고 2라운드에 진출하면 캐나다 혹은 멕시코 외에 최강국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산 넘어 산이 기다리고 있기에 김인식 감독에게 올 겨울은 어느 때보다 후끈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