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양상문 전 롯데 감독, 이순철 LG 트윈스 감독(가운데)은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맨오른쪽)의 ‘비법’을 따라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 ||
양상문 감독이 해임된 이유
롯데가 시즌 종료 후 양상문 감독을 해임하고 강병철 신임 감독을 영입한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롯데는 4년 연속 꼴찌의 수모에서 벗어나 올 정규시즌서 5위를 차지했다. 전반기에는 한때 공동 1위인 삼성과 두산을 반 게임차로 추격하는 등 부쩍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비록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어도 ‘양 감독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게 롯데 팬들의 기본 정서였다.
양상문 감독의 퇴진을 놓고 다양한 소문이 있었다. 우선 롯데 하영철 사장을 비롯한 그룹 고위층에서 5위라는 최종 성적에 크게 실망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야구단 업무를 처음 맡은 하 사장이 시즌 초반 롯데의 신바람 질주를 맛본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는 것. 하 사장은 꼴찌 팀이 5위로 뛰어오른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왜 3위를 하던 팀이 5위로 내려앉았는가’를 힐난했다는 후문이다. 동시에 한화가 김인식 감독 체제로 좋은 성적을 거두자 ‘역시 사령탑은 경륜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롯데 프런트가 순위 싸움이 한창인 8월 초에 이미 강병철 신임 감독과 접촉했다는 설도 있었다. 강 감독 취임에는 부산상고 출신의 강 감독을 사령탑에 앉히기 위해 정권 실세로부터 롯데 프런트에 압력이 들어간 것 아니냐는 소문도 파다했다. 한때 김성근 지바 롯데 코치가 지인을 내세워 롯데 지휘봉을 맡으려한다는 소문이 엉뚱하게도 두산측으로부터 흘러나오기도 했다.
▲ (왼쪽부터) 김경문 감독, 김동주 선수, 선동열 감독. | ||
지난해 이맘 때 두산 간판타자 김동주가 은퇴 선언을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가정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끝에 도무지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며 잠시 잠적한 사건이었다. 구단측이 각고의 설득 작업을 한 끝에 김동주는 올 1월에 주장 완장을 차고 다시 두산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김동주는 김경문 감독과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시즌 중반의 일이었다. 롯데 양상문 감독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는 김동주다”라는 얘기를 했고, 고려대 1년 선배인 김경문 감독은 취재진으로부터 이 같은 얘기를 전해들은 뒤 “그래? 그럼 김동주 데려가라고 해”라고 말했던 것. 졸지에 처지가 이상하게 돼버린 김동주가 감독과 소원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즌 중반 이후에는 김동주가 FA 자격일수를 채우는 문제로 언론에 고민을 털어놓자 김경문 감독이 대타로 출전시켜가며 경기수를 채워줬다. 그러나 정작 시즌 막판에 자격일수를 채운 김동주가 발목 부상 등을 이유로 출전을 꺼리자 김경문 감독이 대노했다. 김 감독은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경우엔 준플레이오프에서 김동주를 기용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기도 했다. 두산은 막판에 SK를 끌어내리고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고, 김동주도 출전했다.
이순철 감독의 ‘벤치마킹’
지난 7월, LG 이순철 감독은 투수 김민기 때문에 더그아웃에서 한바탕 ‘이벤트’를 벌인 적이 있다. 김민기가 강판되는 과정에서 글러브를 집어던지며 항명하자 이에 격분한 것이다. 성적이 하위권에 처져 있고, 감독과 젊은 선수들 간의 갈등 때문에 LG가 구설수에 올라있던 상황이었다. 이 감독은 순간적으로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더그아웃의 의자를 발로 차고 집어던지고 고함을 치는 등 일종의 오버액션을 취했다. 해태 시절의 김응용 감독 밑에서 보고 배운 그대로였다.
▲ MBC <뉴스데스크>의 ‘도청 X-파일’ 관련 보도 장면. | ||
이순철 감독은 솔직하다. 시즌 초반 “삼성의 라이벌이 될 만한 팀은 LG밖에 없다”며 동기생인 선동열 감독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발언을 했다. 훗날 이 감독은 “나라도 방방 떠야 프로야구 열기가 살아날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공식적으로’ 이순철 감독은 올 시즌 대구 원정경기 때 선동열 감독과 술자리 한번 갖지 않았다. 그러나 ‘비공식적으로’ 두 감독은 수차례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고민을 상의했다. 물론 두 감독은 여전히 “우린 만난 적 없어”라고 말한다.
X-파일과 라이온즈
삼성은 당초 올 시즌 종료 후 야구전용구장과 관련해 나름대로 청사진을 제시하려고 했다. 대구광역시의 재정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나서서 조금만 밑그림을 그려준다면 삼성은 전용구장 건설과 관련해 구체적인 안을 내놓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해 김응용 사장이 CEO로 취임한 뒤 1년간 발품을 팔며 뛰어다녔다. 삼성이 먼저 나서서 구장을 짓는 것은 외국인 주주의 반대 등에 부딪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자체적으로 여론을 조성했다. 라이온즈 홈팬들이 전용구장 건설 캠페인을 벌이도록 도와줬고, 자체 인력을 파견해 미국과 일본의 야구장 실태를 조사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모두 허사가 됐다. 시즌 중반 정재계에서 튀어나온 ‘X-파일 사건’ 덕분이었다. 대선 자금 불법 로비와 이를 둘러싼 불법 도청 등 한국을 뒤흔든 이 사건 때문에 라이온즈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모그룹 삼성이 깊숙이 관여된 상황에서 신축구장 운운할 수는 없는 일. 오히려 몸을 사리는 게 낫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삼성은 시즌 종료 후 “전용구장을 짓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예년의 입장으로 한 발짝 물러난 상태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