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생이니까 올해로 만 50세(8월생). 구옥희라는 이름은 30대 후반인 기자가 중학교 때부터 들었다. 이름 앞에 항상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이라는 설명이 붙은 가운데 말이다.
지난 세밑 절친한 선배 덕에 구옥희 프로와 그의 가게에서 무척이나 오랫동안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구 프로가 국내 대회에 출전하거나 일본으로 취재를 갔을 때 간혹 만난 적은 있지만 모두 공식적인 자리였고, 사적으로 편안하게 만나기는 골프기사를 쓰기 시작한 98년 이래 처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가지에서 크게 놀랐다.
먼저 놀란 것은 외모였다. 올해 만 50세가 되는 아줌마지만 너무도 고왔다. 30년 이상을 필드에서 보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피부가 깨끗했고, 몸도 “항상 관리한다”는 말처럼 군살 없이 날렵했다.
두 번째는 도인을 연상케하는 그윽한 성품이다. 구 프로는 지난해 10억원에 달하는 큰 사기를 당했다. 국내정상을 거쳐 83년부터 일본 진출 1세대로 적지않은 부를 이뤘다고 하지만 10억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나마도 남에게 빌려 사기를 당한 탓에 자신의 돈으로 현재 갚고 있는 중이다.
이 정도면 화병에 골프는 물론이고, 정상적인 생활도 힘든 게 보통이다. 하지만 구 프로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언론에 알려진 것은 늦가을이지만 이미 지난해 봄에 사기당한 것을 알았어요. 그러고도 바로 우승을 했지요. 가까운 사람들조차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느냐고 갸우뚱해요. 법에 호소를 한 것도 제 손으로 한 게 아니고 가까운 지인이 보다보다 너무 답답하니까 고소장을 낸 거예요. 아쉽기는 하지만 할 수 없죠. 제 인생의 인연이 그런가보죠.”
3시간이 넘는 저녁은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뭐 특별히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에 골프인생의 깊이가 깊은 만큼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솔하고 생생했다. 불교철학이 섞인 인생론 골프론을 듣다보니 골퍼가 아니라 도인과 마주앉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한국 여자골프의 세계제패를 ‘98년 박세리’로 알고 있지만 사실 구옥희는 이보다 10년이나 빠른 88년 스탠더드레지스터대회에서 한국인 첫 미LPGA 우승을 일궈냈다.
골프에서, 그것도 여자가 만 50을 넘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이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이는 현재 전세계에서 구옥희밖에 없고, 골프역사를 통틀어도 몇 명 되지 않는다. 구옥희는 세월을 초월한 골프실력은 물론이고, 사람됨됨이 또한 ‘한국 골프의 영원한 맏언니’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나무를 떠나 집으로 향하며 다음과 같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구옥희가 고국의 언론에게 푸대접을 받고 있고, 또 팬들은 실체를 잘 모르고 있다’고.
구옥희는 두 번 은퇴를 심각히 고민했다. 15년 전 또래 선수들이 필드를 떠날 때 자신도 많이 흔들렸지만 ‘참선’을 하면서 이겨냈다. 또 지난해 우승 후 10개 대회를 연속 컷오프당하자 ‘나이를 이길 수 없구나’하는 생각에 은퇴를 고민했다. 하지만 다시 샷감각이 살아나 이도 극복했다.
구옥희는 올해도 현역으로 뛴다. ‘골프와 결혼한 구옥희의 50세 우승’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스포츠투데이 골프팀장 einer@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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