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성이 지난 4일 풀럼과의 홈경기에서 프리미어리그 첫골을 넣은 후 포효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첫 골 모든 기자들이 박지성의 첫 골이 터지기를 바랐지만 그때마다 박지성의 반응은 무덤덤이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는 터지겠죠”란 말을 반복하며 애써 태연함을 가장해야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무거운 납덩어리가 자리한 듯 답답했던 게 사실이었다.
“아들이지만 속마음을 잘 안 털어 놓는다. 그런데 지난번 경기에서 첫 골을 넣고 후반에 맥이 풀린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첫 골에 대한 부담을 덜고 나니까 몸 속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것이다. 그걸 보면서 지성이의 마음고생을 읽을 수 있었다.”
부상 박지성은 지난 1월8일 자체 연습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했다. 오른쪽은 네덜란드 시절에 수술까지 했던 부위라 그동안 부상당할까봐 가뜩이나 신경을 썼던 곳이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지성이의 몸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연습경기하는 거니까 부담을 갖지 않았다. 운이 없었던 것 같다. 누가 찬 공에 오른쪽 발을 갖다댄 것이 그냥 돌아갔다. 당시 지성이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경기에 계속 출장해야 했고 아직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라 하위권의 팀들과 게임이 있을 때 골 넣을 찬스도 기대할 수 있었다. 호나우두와 긱스도 출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기회를 부상으로 놓쳤으니까 얼마나 답답했겠나. 집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지성이가 이렇게 말했다. ‘어휴, 저 게임은 내가 뛰어야 하는데’라고.”
평점 박지성은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마치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각 매스컴에서 그날 뛴 선수들의 활약도에 따라 평점을 매기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시절엔 평점을 2점 받은 적도 있었다. 아마도 2점이란 점수는 박지성의 축구 인생에 영원히 기록될 최하 점수일 것이다.
“지성이도 평점엔 신경을 많이 쓴다. 경기 뛰고 나오면 ‘오늘은 몇 점짜리’라는 말을 한다. 자기 스스로 평가할 수 있다는 소리다. 풀럼전과 (설)기현이가 있는 울버햄프턴과의 경기에서 9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지성이는 9점이란 점수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하더라. 9점은 완벽한 플레이어에게 줄 수 있는 점수인데 자기는 그 정도로 잘 뛰지 못했다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7점 밑으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적응 프리미어리그가 속도전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박지성도 이 부분을 모르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처음 한동안은 너무나 빠른 경기 진행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도 네덜란드 시절보단 적응 속도가 무척 빠르다. 프리미어리그 데뷔 시즌을 무리 없이 잘 소화해 내고 있어 대견하다.”
연습 에인트호벤 시절엔 몸이 아파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무조건 주전으로 뛰어야 했다. 그러나 맨유에선 최고의 스타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뛸 수만 있다면 무조건 ‘생큐’해야 하는 처지다.
“지성이가 연습할 때 가장 감탄해 마지 않는 선수가 웨인 루니다. 정말 잘하는 선수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네덜란드에선 훈련 끝나고 슈팅 연습을 따로 하지 않았다. 슈팅은 스트라이커만 하는 거라고 인식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은 따로 슈팅 연습을 한다. 그렇게 안 하면 따라잡을 수 없다고 절감한 것이다. 트래핑이나 키핑 등 지성이가 느끼는 부족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