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나인브릿지 대회에서 샷하는 김주미. | ||
지난 19일(한국시간) 김주미(22·하이트)가 미LPGA 투어 개막전에서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안았다. 김주미의 우승은 한국 선수가 LPGA 투어 개막전에서 거둔 첫 우승인 동시에 하와이대회 첫 승이기도 하다. ‘살인미소’라는 별명만큼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김주미는 특유의 낙천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기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미셸 위의 참가로 화제를 모은 필즈오픈에 출전차 대회 장소로 이동 중인 김주미와 전화 인터뷰를 나눴다.
전화 목소리가 하늘을 훨훨 나는 듯했다. 우승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의 표시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경쾌한 스타일이라며 자주 끊어지는 국제전화에 싫은 내색 없이 행복 모드를 유지해나갔다. 김주미와는 직접 얼굴 보고 인터뷰한 적이 없는데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기자의 마음을 풀어 헤치는 매력이 있었다. 김주미한테 단순한 우승 소감보다는 우승 이후 네티즌들이 제기한 여러 가지 ‘의문 부호’들을 물어보는 걸로 인터뷰를 진행해 나갔다.
김주미는 안시현과 스물두 살 동갑내기 친구 사이다. 어렸을 때부터 안시현과 함께 골프를 배웠고 정해심 프로 밑에서도 1년간 동고동락했다. 안시현이 2003년 CJ나인브릿지대회에서 우승해 신데렐라로 탄생하기 전까지 한국 골프계에선 김주미의 존재가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나인브릿지대회 우승 후 안시현이 미국으로 진출하는 ‘고속 열차’에 탑승한 반면 김주미는 안시현의 그늘에 가릴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미LPGA 무대에 도전했고 어렵게 풀시드권을 따냈지만 2005년 첫 해에는 여러 차례 컷오프 탈락을 겪으며 쓰라린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런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이상한 기류가 흘렀고 기자들 사이에서도 두 사람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김주미는 이런 시선에 대해 똑 부러진 입장을 취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싸울 때가 있는가 하면 금세 화해해서 사이좋게 지낼 때도 있잖아요. (안)시현이와의 관계도 그런 부분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시현이의 나인브릿지 우승 후 뭔가 큰 오해가 있긴 있었어요. 그 일로 인해 울기도 많이 울었고 가족들이 상처를 받았는데 결국 어른들이 나서서 풀 수 있었어요. 지금은 이전보다 더 가깝게 지내요. 정말이에요.”
▲ 지난 2004년 나인브릿지 대회 당시 인터뷰하는 모습. | ||
“전혀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죠. 네 그래요. 솔직히 질투났어요. 아니 질투라기보단 부러웠죠. ‘난 언제 저렇게 될 수 있나’ 싶어서.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뿐이었고 내 갈 길을 개척해야 했어요. 한국에선 막연히 LPGA 우승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 보니까 우승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더라구요. 그 기회를 잡기가 힘든 거지.”
김주미는 우승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한 가지가 성형수술 여부였다. 2004년 시즌 이후 치아를 뽑은 뒤 임플란트 수술을 받았는데 이 수술 후 3개월여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훈련도 못하고 살도 빠지면서 얼굴선이 계란형 미인으로 변했다. 우승으로 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보니 자연스레 성형수술 의혹이 화제가 됐던 것이다.
“입을 다물면 치아가 맞물려지지 않아 풍치가 생겼어요. 어금니가 계속 안 좋았죠. 당시 미LPGA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해 풀시드권을 딴 상태라 2005년 데뷔 첫 해가 어느 때보다 중요했거든요. 그런데도 수술을 결정했어요. 더 이상 미뤘다간 골프 자체가 힘들 수도 있었으니까요. 근데 사람들 정말 재밌어요. 제 모습이 변한 걸 두고 8천만원을 들여 수술을 했다느니, 코를 세우고 턱을 깎았다느니, 보조개 수술을 받았다느니, 정말 장난 아니더라구요. 제가 오죽 답답했으면 SBS의 김재열 해설위원한테 방송 인터뷰 중에 병원 가서 진단서 떼어 보여줄 수 있다고 했을까요.”
하지만 김주미는 주위의 성형 의혹에 대해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간다고 한다. 왜냐고 물었더니 “헤헤 제가 봐도 진짜로 사람 됐더라구요. 이전엔 영 얼굴이 아니었거든요”라며 웃어 제친다. 얼굴에 자신감이 붙으니까 더 자주 웃게 된다면서 시원시원한 답변들을 쏟아냈다.
김주미의 표현대로라면 미국 진출하면서 거의 ‘알몸’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즉 영어, 문화, 투어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조차 갖지 않고 생짜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첫 해에는 미국시민권자이자 한때 연기자 정선경과의 열애설로 화제를 모은 남영우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남영우와는 양쪽 가족들이 오랜 친분을 이루고 있어 친하게 지내는 오빠동생 사이인데 남영우는 초짜 김주미를 위해 투어 가이드로 두 달 가까이 활동했다.
“영우 오빠랑 다닐 때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어요. 모든 걸 알아서 해줬으니까. 그렇게 생활하다가 갑자기 혼자 있게 되니까 어휴, 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치아 교정 때문에 몸은 아프지, 영어는 전혀 안되지, 공은 맞지도 않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꼬이고 꼬였어요. 영어를 못하니까 ‘쫄아서’ 말도 안 나오는 거예요. 아니 미국에선 왜 다 영어를 써야 한대요? 한국 선수들도 많은데 한국어 안내는 왜 없는 건가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 숙이고 다녔죠 헤헤.”
김주미는 말을 참 재미있게 했다. ‘귀엽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애교 만점의 숙녀였다. 호텔에서 밥 해 먹다가 소방차가 출동할 뻔한 일과 소속사가 맥주회사라 우승 후 파티에서 그 회사 맥주만 마셨다는 접대용 멘트까지 개그맨 이상의 입담을 자랑했다.
▲ 지난 2003년 김주미는 이동수패션에서 수여하는 한국여자프로골프대상(국내)을 받았다(왼쪽은 서혜자 대표이사). | ||
아빠가 없을 때 김주미는 직접 운전을 하면서 대회 장소로 이동한다. 다행히 스폰서의 도움 덕분에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골프에만 신경쓰기에도 벅찬 일정들 속에서 직접 챙겨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보니 약간은 스트레스도 받는단다.
김주미는 올해 우승컵을 받은 SBS오픈대회에 대한 아픈 사연을 공개했다. 지난해 미국 데뷔전 대회가 바로 SBS오픈이었던 것. 수술 후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한 채 대회 출전을 감행한 결과 데뷔전부터 컷오프 탈락이라는 쓰라린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작년 그 대회 때 마지막 시합 날 전 옆에서 퍼팅연습을 했어요. 컷오프된 선수들은 모두 짐을 꾸려 떠났지만 전 끝까지 남았어요. 오기였다고 할 수 있죠. 근데 컷오프 탈락은 그게 끝이 아니더라구요. 셀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조금씩 성적도 좋아졌고 톱10에 두 차례 들기도 했어요.”
좀 전에 접대용 멘트로 맥주 운운했지만 맥주는 배가 불러 오래 못 마신다는 ‘주당’ 김주미의 주량은 소주 네 병이다. 스무 살 아가씨가 좋아하는 가수는 동방신기도 김종국도 아닌 김민종이었다. 노래가 좋다기보다는 윤다훈 등과의 친분으로 맺어진 사이였다. SBS오픈 때 김민종이 프로암대회 참가차 하와이를 방문했다가 스케줄을 조정해 가며 마지막 날까지 남아 김주미를 응원할 정도의 의리를 과시했다고 자랑이다.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는 김주미는 기자가 남자 친구의 존재에 대해 묻자 끝까지 ‘오리발’로 일관하다가 다음 우승 때 속시원한 대답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곤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