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은 사실 주최국 미국이 일정이나 규정 등을 지나치게 자국 위주로만 만드는 등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했다. 국가대표 선수 자격과 구성에도 구설수가 잇달았고, 16개 팀을 짜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단 대회가 시작되고 한국 드림팀의 눈부신 선전이 이어지면서 그리고 애국심을 앞세운 각국 선수들의 열띤 대결과 팬들의 응원전이 펼쳐지면서 국가대항전 특유의 열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LA 남쪽 애너하임의 LA 에인절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1조 8강 리그에서 한국팀과 응원단이 보여준 열기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손에 땀이 배는 순간들이 반복되는 가슴 뜨거운 기억들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기자실에서는 한 팀을 응원하거나 아무리 좋은 플레이가 나와도 큰소리로 성원을 하는 것 등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한국팀의 선전이 펼쳐질 때마다 취재하던 한국 기자들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응원을 하다가 ‘기자실 내에서는 응원 금지’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게 만드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한국 드림팀이 일본과 재대결을 벌인 지난 16일의 명승부는 관중석의 뜨거운 열기가 함께 야구 기자로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 경기 시작 전 운동장에 내려가 취재를 하고 기자실로 돌아오는데 잠시 혼란스러웠다. 보이는 관중들은 모두 다 한국말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LA에서 애너하임으로 가는 5번 고속도로는 평소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가 두 시간 반이 걸렸는데 길을 꽉 메운 자동차의 대부분은 한국팬들이 운전하고 있었다.
이날 공식 입장 관중은 3만 9679명. 그중에 적어도 3만 명은 한국인들이었다. 경기 전 양국 국가가 연주됐는데 관중석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 소리는 기자실에 서 있던 기자의 가슴도 덩달아 뜨겁게 만들었다. 하물며 운동장에 도열해 있던 선수들은 오죽했으랴.
이젠 한국팀이 뛰는 운동장이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함성은 에인절스 스타디움을 완전히 압도했다. 거긴 에인절스 스타디움이 아니라 잠실야구장이었다. 대표팀 선수들도 예상치 못한 관중석의 뜨거운 응원에 큰 힘을 얻었다며 감사함을 전달했다.
미국 팬들도 한국팀의 선전에 매료됐고 한국 응원단의 흥겨운 응원에 함께 함성을 질러댔다. 미국이 판을 깔아준 WBC 대회는 결국 대한민국이 주인공이 된 우리의 잔치가 된 셈이었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