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 ||
후반 33분 서울의 박주영이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1-1 동점을 만들자 수원의 골키퍼 이운재(33)는 한참이나 그라운드에 엎드려 일어설 줄 몰랐다. 박주영의 페널티킥은 이운재의 왼 손을 스쳐 방향이 약간 바뀌기는 했지만 골네트를 뒤흔들었다. 이운재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고 반대 편에선 박주영이 기도로 골세리머니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상반된 장면은 다음 날 많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이운재로선 맞수 김병지(36·서울)와의 시즌 첫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 더 아쉬웠다. 박주영의 골이 터지기 전까지 수원은 후반 19분 외국인 선수 이따마르가 김병지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1-0으로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 최고의 수문장 이운재와 김병지의 라이벌 관계가 새삼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김병지가 독일월드컵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될 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 뒤부터다. 대표팀 안팎에선 이운재의 독주체제로 굳어진 골키퍼 포지션에도 경쟁 구도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2002한일월드컵 때와는 처지가 뒤바뀐 김병지와 이운재의 반응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김병지는 1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왜 내가 대표팀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지 운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운을 뗐다.
“대표팀의 그 포지션에서 문제가 없었다면 그런 얘기가 안 나왔을 것입니다. 제가 최근 여론의 중심에 서 있는 이유도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저를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력이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자신감도 있고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보고도 싶습니다.”
김병지는 결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표팀 코칭스태프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왜 김병지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화끈한 답을 내놓았다.
“1차적인 기준은 경기력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은 여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즌 경기에서 제가 보여준 것이 있기 때문에 저를 언급하는 것이겠지요.”
3년 후배지만 이운재와 라이벌이라는 관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모든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경기력은 물론이고 연봉이 될 수도 있고 소속 구단으로부터 받는 대우도 제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팬들도 이제는 축구를 전문가 수준에서 보기 때문에 저를 지지하는 의견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김병지는 경기장 밖 이운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밝혔다.
“운재는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어색해 하지는 않아요. 개막전 끝나고도 가서 수고했다고 얘기해줬어요. 저랑 라이벌이라고 기사화되고 언급되는 것에 대해서 운재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해요. 같은 포지션에 있고 나이 차이도 그렇게 많이 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친한 사이는 아닙니다. 그저 선후배 사이일 뿐이죠.”
김병지는 이운재와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맛봤던 좌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사실 많이 실망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내가 주전으로 나올 것이니까 경기장에 보러 오라고 입장권도 다 보내줬었거든요. 하지만 히딩크 감독 부임 초기에 잘못 보였던 부분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습니다. 폴란드전 앞두고 가진 미팅 때 히딩크 감독이 선발 라인업 애기해주는 걸 듣고 알게 됐죠.”
김병지는 2002월드컵 기간과 그 후 얼마 동안은 힘든 좌절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스스로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제 김병지의 시대는 끝났다. 김병지도 이제 무너지는구나’라는 주변의 얘기를 듣고 이를 악물었다고.
“저는 시작부터가 잡초 같았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습니다. 2002년 이후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자부합니다. 이런 것이 스포츠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병지는 월드컵에 가고 못 가고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을 했다. 나라를 위해서, 대표팀을 위해서 최상의 경기력을 가진 선수가 게임에 나가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모든 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운재는 김병지의 대표팀 복귀설에 대해 얼마 전 다소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나 역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땀과 눈물을 흘렸다”며 “좋은 후배들이 많다. 후배들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병지 형이 (대표팀에) 온다고 해도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행 아드보카트호에 승선할 태극전사 23명 중 골키퍼는 3명이다. 지난 1∼2월 해외 전지훈련 때는 이운재 조준호(제주) 김영광(전남)이 대표팀에 합류했지만 거의 이운재의 독무대였다. 김영광은 부상 때문이었지만 조준호 역시 제대로 된 테스트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이운재의 독주 체제가 더욱 공고해진 셈이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이운재에게도 주전 경쟁에 대한 긴장감을 불어넣을 모종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 방안의 하나가 바로 김병지의 대표팀 재발탁이라는 것이다.
김병지는 지난 연말 인터뷰에선 “내가 대표팀에 다시 뽑혀서 벤치만 지킨다 해도 운재가 좀 더 긴장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병지의 이 같은 견해에 대해 아직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라이벌 이운재로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 같다.
독일월드컵 최종엔트리를 확정하는 시점은 5월 중순 이후가 유력하다. 김병지의 아드보카트호 승선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운재-김병지 비교 | ||
이운재(수원) | 구분 | 김병지(서울) |
1973년 4월 26일(33세) | 생년월일 | 1970년 4월 8일(36세) |
182cm, 86kg | 체격 | 184cm, 77kg |
93경기 82실점 | 대표팀 기록 | 61경기 73실점 |
26경기 33실점 | 2005년 K리그 기록 | 36경기 31실점 |
조상운 국민일보 체육부 기자 s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