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감독은 “매니저가 ‘미친 것 아니냐’고 만류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김 감독의 연봉 계약 때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챙기는 매니저 입장에서는 수입이 3분의 1로 줄어들기 때문에 말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매니저는 김 감독의 속내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 감독은 “한국에서 배운 배구로 인해 부와 영광을 안았다. 조국의 후배 양성에 남은 인생을 걸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지난 1981년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한 김 감독은 1984년 잠시 귀국해 3년간 국내에서 활동하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현대가 힘들어지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을 이탈리아에 남겨두고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 감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또 이탈리아에서 우승을 해본 입장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었다”며 “돈은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선수와 감독으로 트레비소에서 우승컵을 안는 등 이탈리아 배구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지금도 가족들은 트레비소에 살고 있다.
또 이탈리아 대표팀의 2진 감독을 맡아 이탈리아 배구의 대부로 떠올랐다. 이탈리아 청소년팀까지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미련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연봉을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