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의 반 니스텔루이. 그는 이번 2006 독일월드컵이 첫 출전이다. 로이터/뉴시스 | ||
그런데 이들처럼 20대를 전후한 ‘앙팡테리블’ 외에도 나이로 봐서는 한물간듯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 처음으로 명함을 내미는 스타급들도 즐비하다.
네덜란드의 쾌남아 반 니스텔루이. 반 바스텐 이래 가장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 당대의 스타는 2002 월드컵에서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바람에 서른 살의 나이에 첫 월드컵에 도전한다. 서른 살이란 나이는 체력이 떨어질 거란 우려와는 달리 일정 수준의 스테미너가 받쳐주기 때문에 축구 선수로서 노련미를 발산시킬 수 있는 절정의 연령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2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 체코의 파벨 네드베드가 드디어 월드컵을 노크한다. 유로96을 통해 전 세계에 그 이름을 각인시켰던 네드베드는 2003 유럽 최우수선수에 기록되는 등 가히 폭발적이고도 다이내믹한 플레이를 전개해 왔지만 유로2004에서 아깝게 좌절한 이래 이번 월드컵을 그야말로 인생의 마지막을 거는 무대로 생각하고 있다. 올해 나이 34세다. 하기야 브라질의 베베토도 34세 때 프랑스월드컵에서 3골이나 득점했다. 그도 문제없을 것으로 본다.
다음 그 유명한 우크라이나의 저격수 안드레이 셰브첸코. 구 소련의 해체 이후 과거 소연방에서 가장 강력한 자원을 보유했던 우크라이나가 월드컵에 등장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결코 재수가 아니다. 유럽챔피언 그리스, 휘발성의 공격력을 가진 덴마크, 2002월드컵대회 3위의 터키를 제치고 가장 먼저 지역 예선을 통과한 나라가 우크라이나다. 스피드와 파괴력, 테크닉 3박자를 고루 겸비한 희대의 스트라이커 셰브첸코가 나이 서른에 처녀 출전한다는 것은 축구의 비극이다. 여하튼 팬들은 그의 월드컵 데뷔를 자국팀의 본선 진출만큼이나 손꼽아 기다려 왔다.
그 외에 건국 이래 처음 본선에 진출한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드와이트 요크(35), 호주의 비두카(31), 가나의 쿠푸르(30) 등은 그들의 조국이 워낙 축구 약소국으로 고생해온 탓에 이제야 월드컵 무대를 밟는 행운을 누렸다. 강국 독일 선수이면서도 36세의 나이에 겨우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한 옌스 레만도 실제 월드컵 경기장에 들어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위에 언급한 선수들은 모두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는 것이지만 나이로 보아 그리고 소속팀의 희박한 차기 대회 진출 가능성으로 인해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이 될 공산도 매우 크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이들 베테랑들의 기본적인 역할과 심리적 기능 부문에 관한 것이다. 98년 프랑스월드컵대회 직전, 브라질의 호마리우는 대표팀의 밸런스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를 ‘신구 계층의 융합과 조화’로 규정했다. 신진들로 젊은 스쿼드를 구성해서 유지하는 것, 즉 젊은 피 수혈이란 언제 어디서나 요구되는 항목이긴 하지만 경험 많은 노장들의 균형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메이저 대회 경기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컨대 반 바스텐 감독의 네덜란드는 완전히 세대교체에 성공한 그야말로 젊은 기사단이란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하지만 미드필드 장악을 통한 안정적인 공수의 조율이라는 측면에서 비에라, 제라드, 램퍼드, 리켈메, 에메르손 등 여타 강국의 월드 클래스에 버금가는 일류선수가 부족하다. 기껏해야 코쿠와 반 보멜 정도가 눈에 띄지만 여전히 여타 우승 후보국들에 비하면 네임 벨류가 떨어진다.
독일의 클린스만 감독과 완전히 등진 수비수 뵈른스가 그토록 악을 쓰는 이유는 수비라인에서 경험 많은 인재의 역할이 얼마나 긴요한 것인지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2002 월드컵때, 히딩크는 노쇠한 수비라인을 젊게 만들어보려 무척 애를 썼지만 결국 홍명보와 같은 백전 노장들에게 다시 의존하게 되었고 지금 와서도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김태영, 최진철 없이 4강에 들 수 있었을 거라는 상상은 아무도 감히 하지 못한다. 현 대표팀의 수비가 여전히 불안한 것도 홍명보 세대 이후 제대로 된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축구에 있어 균형이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 팀의 공수 균형을 전술적 차원에서 관찰하는 것도 좋지만 한 팀의 연령층 분석에 근거하여 메이저 대회 경험과 노련미, 그리고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패기와 승부욕 중 어떤 변수가 더 영향을 미칠지를 비교해 보는 것도 축구 마니아들의 훌륭한 숙제가 될 것 같다.
2002월드컵대표팀 미디어 담당관
현 독일대사관 참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