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겨울 이를 악물고 웨이트트레이닝에 열중했던 이승엽은 올 시즌 홈런포를 연달아 쏘아올리고 있다. | ||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승엽이 엄마의 정기 진료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서울의 삼성의료원까지 가는 시간도 많이 소요되지만 몸이 불편한 아내를 챙기려면 이것저것 준비해야 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내는 천성이 순종형이다. 결혼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말에 반대하거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택시 타는 법도 몰랐다. 항상 자전거를 이용하면서 경기장과 학교, 집을 오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부쩍 머리가 아프다는 얘길 자주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병원에 가 보라고 건성으로 대답했고 아내는 ‘그러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약국에서 진통제를 사와 그걸로 버텼다. 경기장에 갈 때마다 아내는 검은색 비닐 봉지에 진통제를 담아 갔다. 그런데 승엽이가 워낙 좋은 성적을 내면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보니 솔직히 아파도 아픈지를 모를 정도였다.
2000년도였다. 진통제로 버티던 아내는 결국 병원을 찾았다. 너무 통증이 심했던 탓이다. 담당 의사가 진찰을 해보더니 며칠 뒤에 다시 정밀 검진을 하자고 했지만 아내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내가 ‘혹시나’ 싶어 병원 가는 걸 재촉하면 ‘내 병은 내가 안다’면서 고집을 피웠다.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내가 나한테 화를 내며 ‘반항’을 해 보였다. 그러나 내 관심사가 온통 승엽이한테만 쏠려있다 보니 아내의 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도 사실이었다.
▲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 ||
2002년 1월 6일은 승엽이 결혼식이 예정돼 있었다. 대사를 앞두고 아내의 병을 알게 된 난 도무지 제 정신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일단 승엽이 결혼식을 올린 다음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승엽이한테는 어쩔 수 없이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 얘기를 들은 승엽이는 결혼식을 연기하겠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난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시키자고 달랬다. 승엽이네 부부를 신혼 여행 보낸 다음 1월 9일 아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신혼 여행 가서도 엄마의 상태를 걱정하던 승엽이가 결국엔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하긴 엄마가 누워있는데 신혼 여행을 즐길 만한 기분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술 받은 후 지금까지 아내는 조금씩 차도를 보이면서 나와 함께 재활 훈련 중이다. 수술 후 한동안 사람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다가 지금은 승엽이가 경기하는 TV를 보면서 반응을 나타내는 게 전부다. 승엽이가 일본에 가서 독하게 운동했던 배경엔 엄마의 존재가 자리한다. 자기가 좋은 성적을 내고 TV에 자주 얼굴을 비치면 아픈 엄마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야구에만 매달렸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아내가 아픈 데에는 내 책임이 너무나 크다. 아들한테 신경 쓰는 것의 반만이라도 아내에게 관심을 뒀더라면 상황은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 아내의 수술 후 난 공황 상태였다. 갑작스런 아내의 변화에 적응이 안됐고 무엇보다 나에 대한 자책감으로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내 손을 필요로 하는 아내가 거동도 못한 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살 만해졌는데, 이제야 고생하며 뒷바라지한 아들 놈 덕 좀 보게 생겼는데, 아! 이제야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부부 둘이서 애틋하게 살아보려 했는데…. 세상은 정말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게 절대 아니었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