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철(왼쪽), 김상식 | ||
99년 프로에 함께 입단한 이후 줄곧 국내 정상급 수비수로 평가받아온 이들은 지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주인공인 이영표, 박지성, 안정환, 김남일, 이운재 등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아온 편이다.
이번 합숙 기간 중 몇 차례 진행됐던 단체 인터뷰 때에도 기자들은 여지없이 해외파들에게 쏠렸고 두 선수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축구인들은 잘 안다. 이들의 말솜씨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기자들이 이들의 진가를 몰라보고 말을 잘 시키지 않아서 그렇지 한 번 말문이 터지면 그 자리에서 배꼽을 내놓아야 한다.
프로에서의 오랜 경력 때문인지 두 선수의 화법에서는 노련함이 묻어난다. 일명 ‘무심화법’이라고도 하는데, 인터뷰 중간 중간 무표정하게 짧고 굵게 던지는 농담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두 선수는 지난 5월 22일과 25일 두 차례 진행된 단체 인터뷰에서 남다른 입심을 발휘했다. 새까만 후배라 할 수 있는 김진규에 밀려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김영철은 바로 옆에서 인터뷰 중인 김진규를 쿡쿡 찌르며 “이 놈이 부상만 당하지 않으면 뛸 기회가 전혀 없을 것 같다”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건국대 1년 후배인 이영표와 잘 지내냐고 묻자 김영철은 “영표가 눈에 띄게 말수가 적어졌다”며 “레벨의 차이가 나는지 아니면 대학 때 혼을 많이 내줘서 그런지 나하고는 도통 얘기를 안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부평고 재학 시절 안양공고였던 이영표와 연습 경기를 많이 했다는 김영철은 “고교 때는 공격수였던 영표가 엄청 빨라서 애를 많이 먹었는데 대학 오니까 별것 아니었다”고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무심화법 농담을 던지면서도 “영표는 워낙 재능이 많고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친한 척해야겠다”며 위기(?)를 피해가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호, 박주영 등 젊은 선수들의 합숙 생활에 대해 묻자 슬쩍 주위를 보더니 “아~ 4대천왕들, 거의 뭐 몰려다니는 깡패라 할 수 있죠”라고 짧게 대답해 기자를 ‘녹다운’시켰다.
아내가 주전으로 출전하지 못해 아쉬워하지 않느냐고 묻자 “와이프는 돌도 안 된 둘째 아이 보느라 바쁠 것”이라며 “아이가 워낙 천하장사 스타일이라 돌보기 힘들어서 남편이 뭐하는지 신경 쓰지도 못한다”라고 전했다.
촌철살인의 언변이라면 축구계에서 이미 ‘식사마’란 칭호를 얻은 김상식도 뒤지지 않는다. 젊은 선수들이 훈련에 매우 적극적인 것 같다고 말하자 김상식은 “얘들이 본선 나가서 거칠게 해야 하는데 훈련 때부터 거칠어서 걱정이다. 순진한 나까지 점점 더 거칠어질 것 같다”며 폭소탄을 터트렸다. 남성들이 자주 쓰는 은어를 빗대며 “훈련이 무척 빡세다”고 토로한 김상식은 “가끔은 나도 젊었으면 좋겠다”며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백지훈, 김진규, 이호, 박주영 등 이른바 국가대표 ‘4대천왕’에 대해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