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없이 응원인파를 토해내는 뮌헨역. | ||
기자가 앉아 있는 좌석 바로 앞에 독일 벤치가 있는데 클린스만 감독이 늘씬한 몸매를 과시하며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부상으로 개막전 경기에 결장한 미하엘 발라크는 한술 더 떠 동료 선수가 골을 넣거나 실축할 경우 벤치를 뛰어나와 과격한 제스처를 취하며 분위기를 돋운다(지면 가운데 사진).
독일 스포츠의 성지로 불리는 뮌헨 경기장에서 개막전을 보고 있으니 한창 레버쿠젠의 바이아레나에서 집중 훈련을 받고 있을 대표팀 선수들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설령 지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멋진 경기를 풀어갔음 좋겠다. 코스타리카처럼 말이다.
기자단 숙소가 있는 뒤셀도르프에서 고속철을 타고 5시간의 여정 끝에 뮌헨 중앙역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월드컵은 존재하지도 않은 듯 했다. 그러나 뮌헨역에 발을 내딛으면서 월드컵이 시작됐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국의 국기로 온몸을 치장한 축구팬들과 독일의 응원단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뮌헨역을 점령해 버렸다. 뮌헨 경기장으로 향하는 전철 안은 한 마디로 ‘We are the world’였다. 개막전에서 맞붙는 독일과 코스타리카 응원단이 뒤섞여 응원 구호를 외치고 멕시코, 이탈리아, 브라질에서 온 응원단들이 경기장을 향해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다.
마치 흰색 타이어를 엎어 놓은 듯한 뮌헨 경기장의 외곽은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듯하다. 독일 경기장들을 보면서 한국의 상암 월드컵 경기장만큼 아름다운 경기장은 없을 거란 생각에 한껏 자부심을 가져 본다.
▲ 클린스만 독일 대표팀 감독. | ||
4년 전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취재한 덕분인지는 몰라도 독일에 있으면서도 자꾸 4년 전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전국이 온통 빨간 물결로 뒤덮이고 월드컵에 광분했던 한 달 여간의 시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4년 후인 지금, 월드컵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와 흥분이 아닐까.
뮌헨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개막식에 구경 간다는 독일인 가족들을 만났다.
월드컵이란 목적은 있었지만 주말의 가족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자연스럽다’는 것. 그게 독일 월드컵의 현주소였다. 쉽게 들뜨고 쉽게 식는 ‘냄비 현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랫동안 축구 강국으로서의 자부심과 기대감이 독일인들의 축구 생활에 저절로 물들어 있는 듯했다.
개막전 경기는 독일이 코스타리카를 4-2로 누르며 귀중한 첫 승을 안았다. 관중들 대부분이 빠져 나간 썰렁한 경기장엔 듣기 좋은 음악과 기자들의 노트북 두드리는 소리만이 울릴뿐이다. 4년 전 세네갈이 프랑스를 ‘점령했던’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뮌헨의 민박집에서 잠을 청하고 내일 뒤셀도르프로 돌아가야겠다. 마지막 안간 힘을 다하고 있을 우리의 태극 전사들이 보고 싶어진다.
독일 뮌헨=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