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를 무너트린 안정환의 골든골 모습. | ||
국내 응원단도 기업과 스폰서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갈등이 증폭되고 있고 독일의 교민 응원단도 여러 개로 분리되어 있다. 스폰서를 달리하는 붉은 셔츠만 4종류가 나돌고 있으며 그 중 한 가지는 빨강색이 들어 있을 뿐 전체는 흰색 계통이다. 독일에 체류하는 방문객이나 교민들은 이제 셔츠를 서너 장 껴입던가 경기 때마다 바꿔 입어야 할 판이다. 대표팀 응원이 패션과 사회풍습의 하나로 정착되는 순간이다. 아아, 대한민국.
98년에 풀로 취재하던 방송 3사는 따로 취재 경쟁을 하는 통에 어마어마한 외화가 쏟아져 나갔다. 모든 일간지는 축구 전문 기고인들이 총 충돌한 상태이며 특히 TV는 예의 그 유명 해설자들 간의 경쟁을 마치 초등학교 반장 선거처럼 간주하고 있다. 축구팀과 축구선수를 경쟁시키면 됐지 또 무슨 해설자와 칼럼니스트를 경쟁시키나. 가히 월드컵축구 천국이다. 오오 대한민국.
그리 기특해 보이던 붉은악마도 조직이 주체할 수 없도록 커지자 이권 개입의 루머에 시달리면서 초창기의 순수성이 도마 위에 여러 번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붉은악마의 실수보다 그간의 공적을 높이 인정하는 편이라 그리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붉은악마가 약간의 시행착오를 노정시킨 시점에서 언론과 소위 네티즌이란 친구들도 변명과 개선의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은 채 인민재판식 결정을 내려버린다는 사실이다. 월드컵의 열기에 대한 희열과 비판은 얼마든지 서로 양보하고 교호할 수 있는 비정치적 주제인데도 말이다. 지금은 월드컵이 마치 여야나 보수·진보 간의 충돌처럼 희화화되고 있다. 어어 대한민국.
과연 이들은 월드컵을 즐기고 있는가. 본인들이 즐기고 있다면야 나도 할 말 없다. 한데 만약에 말이다, 정말 만약에 우리가 16강 진출에 좌절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축구 때문에 울고 웃은 붉은악마와(위) 이탈리아 팬들. | ||
대표팀을 격려하려고 했던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우리가 졌다고 방독을 취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졌을 때 라커룸 근처로 내려와 그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월드컵을 진정으로 즐긴 것은 아니고, 축구를 사랑하지도 않은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스포츠맨십에 실패한 것이 되고 만다.
다행히(?)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며 3 대 1로 졌다. 오히려 이런 가라앉은 분위기가 대표팀을 위해서는 더 좋을 수가 있다. 헝그리 복서가 진정한 배고픔을 잊었을 때 다른 적수에게 KO펀치를 맞는 것처럼 4년 전 우리 집 안마당에서 잘 했다고 해이해 있다가는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일의 주장 발라크는 독일이 조 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고, 일본의 나카다는 몰타에 이기고도 팀에 문제가 많음을 피력했다. 멀리 86년 월드컵 때 감독 베켄바우어는 서독이 아르헨티나를 이겨서는 안 되는 경기라고 우리로서는 믿지 못할 의견을 제시했고, 파울 브라이트너는 만약 서독이 마라도나를 막았다면 세계 축구가 10년은 후퇴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로 치면 ‘독도는 우리 땅이 아닐 수도 있다’던가 ‘굳이 우리가 애써 통일을 해야 되는가’란 식의 이야기와 마찬가지인 망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그러한 비판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도 없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집단 히스테리 증세가 조금 지나치다.
토고전은 시작일 뿐이다. 남은 두 게임은 안방에서 놀라운 성과를 나타낸 대표팀이 바깥에서도 통하느냐는 비정한 판정의 시간이 된다. 아울러 축구를 축구 외적인 것에 이용하거나 오로지 이기적인 승패에 집착하는 것에 대한 우리 모두를 심판하는 운명의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시합에 이기면 이겼다고 콧대가 높아져서 언론 인터뷰를 비켜 가고, 지면 졌다고 인터뷰를 거절하는 일부 선수들도 문제다. 마찬가지로 일년 내내 자기 돈으로 축구표 하나 안 산 사람이 월드컵이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을 보면 뭐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 과연 축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2002년 월드컵대표팀 미디어 담당관
현 독일대사관 참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