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프랑크푸르트의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어쩜 정신을 맑게 해보려는 행동이었을 거다. 솔직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 긴장되고 걱정이 된 나머지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도 이런 심정이었는데 넌 오죽했겠니. 물론 큰 대회 경험이 많은 너를 믿었지만 그래도 월드컵은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무대라 나 못지않게 너도 잠 못 이루는 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 엄마는 아침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더라. 가슴이 떨려서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다는 거야. 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숟가락을 들었지만 솔직히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모래를 씹는 심정이었다.
숙소를 나서기 전 우리는 대표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널 가슴에 품으면서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가에 온통 ‘붉은 꽃’이 지천으로 핀 걸 보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한국 사람들의 붉은 행렬이 경기장으로 이어지면서 경기장 주변이 온통 빨갛게 물든 걸 보고 여기가 독일이 아닌 서울의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JI SUNG’이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고 아낌없이 응원을 보내는 팬들의 외침이 너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이런 모든 기대와 염원들로 인해 작은 네 어깨가 점점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밑으로 가라앉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도 역시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토고를 상대로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내 아들 지성아! ‘도깨비 같은 팀’ 토고전에서의 넌 ‘마징가 제트’ 같았다. 상대 수비수들의 거친 태클에 몸을 날리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얼마나 장하고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전반전에 첫 골을 먹고 네가 너무나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던 걸 난 똑똑히 보았다. 그래도 불안하진 않았다. 한국 선수들이 새까만 아프리카 선수들을 상대로 그냥 물러서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거든.
이제 시작이지? 더 힘들 수도, 더 쉬울 수도 있는 프랑스와 스위스전이 남았다. 지면 진대로, 이기면 이긴 대로 즐기면서 풀어나가자. 목표는 분명 있지만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한 거니까 후회하지 않도록 남은 경기 잘 준비해 나가자.
지성아, 오늘은 네 어깨에 놓인 짐 모두 다 내려놓고 두 다리 쭉 뻗고 푹 자길 바란다. 아빠와 엄마가 너의 영원한 서포터스라는 거 잊지 마라. 사랑한다 내 아들.
정리=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