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예상은 했지만 팀가이스트에 대한 적응 여부가 팀 승패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몇몇 경기는 골키퍼 선방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골키퍼들이 전부 집합했지만 대회 기록은 제각각이다. ‘팀가이스트’와 궁합이 잘 맞아서인지 매 경기 눈부신 선방을 보이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팀가이스트’의 반발력과 스피드를 예측하지 못하고 어이없는 실수를 반복하는 골키퍼도 있다. 공인구 때문에 희비가 엇갈린 골키퍼들을 살펴봤다.
이번 대회에서 팀가이스트와 가장 좋은 궁합을 보였던 골키퍼로는 단연 앙골라의 주앙 히카르두를 꼽을 수 있다.
2무1패로 팀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예선에서 맞붙은 멕시코, 포르투갈, 이란 선수들의 불 같은 슈팅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3경기에서 단 2실점. 32개국 중 골키퍼 중 가장 많은 무려 21개 슈팅을 선방했다. 경기당 7개의 결정적인 슈팅을 막아낸 셈.
A조에서 잉글랜드, 스웨덴에 밀려 16강 진출에 실패한 파라과이의 알도 보바디야도 3경기에서 단 1실점만을 허용하는 눈부신 선방을 보여줬다. 예선 첫 경기인 잉글랜드 전에서 동료 수비수인 카를로스 가마라의 머리에 맞은 볼을 예측하지 못해 자책골을 허용했지만 가공할 만한 공격력을 보유한 잉글랜드, 스웨덴에 맞서 단 한 골의 필드골도 내주지 않았다. 3경기 동안 15개의 결정적인 슛을 선방했다.
네덜란드의 판 데르사르도 아르헨티나, 코트디부아르,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막강한 공격력을 단 1실점으로 틀어 막아냈다. 판 데르사르는 13개의 결정적인 슈팅을 막아냈다.
▲ 이운재 | ||
가나의 리처드 킹스턴 역시 강팀 이탈리아 체코 미국을 맞아 15개의 슈팅을 막아내며 단 2실점만을 허용했다.
비록 예선 세 경기에서 7골을 실점한 일본의 가와구치도 팀가이스트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을 보여줬다. 거의 골로 들어갈 뻔한 21개의 결정적인 상대의 슈팅을 걷어냈다. 크로아티아 전에서는 상대의 강한 페널티킥을 몸을 날려 막아냈으며 브라질전에서도 상대의 완벽한 유효 슈팅을 10개나 막아냈다. 포르투갈의 히카르두도 3경기 1실점으로 안정감 있는 방어 능력을 선보였다.
폴란드의 보루츠도 전 세계 축구팬들의 혼을 쏙 빼놓는 선방으로 주목을 끌었다. 특히 독일과의 경기에서는 후반 로스 타임 때까지 독일 선수들의 무차별 강슛을 신들린 듯이 막아냈다. 비록 종료 직전 한 골을 허용했지만 경기에 승리한 독일 팬들이 보루츠를 향해 기립 박수를 보내기까지 했다.
한국의 이운재도 ‘팀가이스트’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 예선 세 경기에서 상대의 결정적인 슛을 선방했다. 스위스전에서 심판의 이상한 판정으로 먹은 한 골을 포함해 네 골을 실점하기는 했지만 상대의 날카로운 프리킥과 슈팅을 안전하게 막아냈다. 상대의 빠른 크로스와 코너킥도 큰 실수 없이 무난하게 처리했다.
반면 ‘팀가이스트’라면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날만한 골키퍼들도 있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드라고슬라브 예브리치가 대표적. 월드컵 지역 예선 10경기에서 단 1골을 내주었을 정도로 철벽 방어를 선보였으나 이번 대회 세 경기에서는 무려 10골을 허용, 체면을 구겼다.
▲ (왼쪽부터) 히카르두, 보바디야, 예브리치, 미르자푸르 | ||
우리와 맞붙은 토고의 코시 아가사도 팀가이스트에 쩔쩔 맸다. 이천수의 빠른 프리킥에 다이빙조차 하지 못했으며 안정환의 슈팅 또한 낙하지점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세 경기에서 6실점한 이란의 미르자푸르도 쑥스러운 처지. 특히 멕시코전 1-1 동점 상황에서 볼을 걷어낸다는 것이 공교롭게도 상대 공격수에게 연결하는 실수를 범하며 패배를 자초했다.
브라질 영웅 호마리우로부터 “내가 경험한 최고의 골키퍼’라는 찬사를 받은 미국의 케이시 켈러도 팀가이스트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세 경기에서 고작 4개의 슈팅을 선방하는 데 그친 대신 6골을 허용했다. 특히 체코 전에서는 상대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