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8일 25호 홈런을 때리는 이승엽. 바닥을 기던 요미우리의 성적은 지난 1일 이승엽 덕에 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연합뉴스 | ||
내가 승엽이에게 편지를 쓴 건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일본 진출 첫 해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끝 모를 추락을 거듭했을 때도 쓰지 않은 편지였다. 그러나 TV를 통해 비친 승엽이의 얼굴에서 진한 외로움을 느꼈다. 홈런을 치고도 입을 굳게 다물고 베이스를 도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아무리 개인 성적이 좋다 한들 팀 성적이 받쳐주지 않으면 ‘원맨쇼’나 다름없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랫동안 ‘혼자만의 야구’를 하는 아들 녀석이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펜을 들었다. 편지에는 <일요신문>에 연재된 글들을 카피해서 함께 동봉했다. ‘부모가 쓰는 별들의 탄생 신화’를 승엽이가 인터넷으로 봤는지는 모르지만 평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었기 때문에 읽어보고 힘을 내라는 의미에서 기사를 보냈다.
사실 승엽이의 올 시즌 성적은 ‘이보다 더 잘 할 수 없다’고 말할 만큼 너무나 훌륭하다. 가끔은 내 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칠 때도 있다. 이런 순간엔 아버지로서 흐뭇함과 자랑스러움에 절로 행복해진다. 어렵게 운동을 시켰지만 보람이란 걸 느끼게 된다.
요즘 주위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승엽이가 올해 잘나가는 비결이 뭐냐?’고.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과연 지난해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를. 그건 바로 WBC,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었다. 다른 선수들 대부분이 WBC 대회 이후 후유증을 톡톡히 겪고 있는 데 비해 승엽이는 대회를 치른 다음부터 확실한 페이스를 찾았고 큰 굴곡 없이 잘 버텨내고 있다. 내 입장에선 WBC가 마치 승엽이를 위한 대회로 여겨질 정도다.
승엽이는 그 대회를 통해 새삼 야구의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단순히 승패의 결과를 떠나 1회부터 9회까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이전엔 맛보지 못한 짜릿한 쾌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올시즌 초 승엽이의 타격에선 신바람이 느껴졌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이전의 신바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 신바람이 나도 그걸 내색할 수가 없을 것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혼자만 홈런포를 펑펑 터트리는 게 미안할 정도다. 자칫 잘못하면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연패의 늪에서 허우적대다보면 기운을 잃게 되는 게 당연했다. 전화라도 걸어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지금은 어떤 말로도 위로와 힘이 돼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편지를 보낸 것이다.
언젠가 승엽이가 투 아웃, 1, 3루에 타자가 나가있는 상황에서 번트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야구는 잘 모르지만 그 모습을 봤을 땐 ‘아들이 참으로 야구를 잘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상 없이 계속 갈 수만 있다면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애비인 내 자신도 최면을 걸고 있다.
그러나 승엽이 자신은 ‘지금’에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야구 인생의 ‘무지개’를 잡기 위해 여전히 달리기를 해야 하고 그 끝이 어디쯤인지 정확히 파악조차 안 된다.
홈런 1위, 타율 2, 3위를 오르내리는 성적표가 참으로 대견스럽다. 그것도 일본 요미우리에서 말이다. 바람이 있다면 승엽이의 상승세가 팀 성적과 맞물려서 함께 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