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프랑스 8강전에서 프랑스의 앙리(가운데)를 막기 위해 주앙(앞)과 시우바(뒤)가 협력수비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 ||
매 월드컵이 끝나고 결산기가 되면 언제나 똑같은 진단과 처방이 내려졌었다. 국내 리그(K-리그)의 인기를 높이는 다양한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하고 유소년 축구 시스템의 발전이 도모되어야 하며 보다 많은 선수가 외국의 우수 리그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조금 어려운 이야기이긴 하나 사회 체육, 학교 체육을 클럽 축구와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 및 공·사 축구 관련 조직들의 중·장기 플랜 추진 등이 거론되어 왔었다. 항상 진단을 잘못한 적은 없었다. 진단에 따른 처방들도 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확고한 예산의 뒷받침 하에 행정적으로 밀고 나갈 만한 메커니즘이 부재한다는 것이 늘 문제였다. 그러니 사실 이러한 지면상의 논의는 별로 의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K-리그에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으려면 경기력도 향상되어야 하지만 일과 후에 그리고 주말에 축구장을 찾을 수 있는 시민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늘 야근과 잔업, 그리고 술자리가 많은 우리나라는 미안하지만 유럽과 남미 같은 축구 환경을 만들어 내기가 무척 요원하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어야 하지만 뭐 축구를 잘해야 한다며 생활 습성까지 바꾸자고 들고 나온다면 온갖 네티즌과 언론의 욕설에 파묻힐 것이다. 그러니 참 힘들다.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이야 ‘축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포기할 수 있다’라고 말하겠지만 우리 사정이 어찌 그런가. 남북통일도 해야 하고 청년실업도 해소해야 하고 뭐 그런 일각에서 말하는 더 중요한 사회적 어젠더가 있다고 하니 이쯤에서 접어두자.
해서 여기서는 소위 월드컵을 4년마다 치르면서 축구 기술적인 측면에서 어떠한 흐름의 변화가 있었는가를 짚고 넘어 가자. 필자는 유럽에서 대회를 개최할 때마다 월드컵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고 미리 말해 둔 적이 있는데 이번 대회도 사실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압박 축구의 변형이 지배한 것으로 결론짓고 싶다. 여하간 현대축구는 점점 골이 나지 않는다. 워낙 수비전술이 발달하다보니 결국 스피드에 의한 상대 수비 형태의 파괴에만 몰두하게 되고 개인의 창의력보다는 시스템의 우위가 경기 결과를 좌우하는 형식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렇다면 빽빽한 중앙 수비를 뚫기 위한 천재적인 스타들의 기량이 발휘되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지배와 압박의 축구’ 논리는 그러한 천재들의 역량을 도저히 펼칠 수 없을 정도로 기계화되어 있다. 그나마 노년기의 지단 정도가 군계일학의 예술을 펼친 수준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1970년 월드컵, 브라질과 펠레의 향수에 젖어 살고 있는 것이다.
▲ 아르헨티나 캄비아소의 환상적인 골. 로이터/뉴시스 | ||
그 지긋지긋한 포메이션 논쟁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공격을 강화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수비를 강화할 것인가가 기본 포맷을 결정짓는 출발점이 된다. 대부분 원톱을 올려놓고 나머지를 미드필더, 그것도 전원이 수비에 가담할 수 있는 수세적 플레이어들로 깔아 놓는다. 어느 경기나 할 것 없이 상대가 공격으로 선회할 때 무려 6명의 선수들이 중앙수비수 형태를 취하는 것을 목도한다. 프랑스에 대적했던 브라질 미드필더들의 움직임을 보라. 호나우두와 호나우지뉴 이외에는 모두 수비수다. 이게 다른 나라도 아닌 브라질의 현주소라면 앞으로 월드컵 축구는 점점 재미없어진다. 그럼 ‘수비말고 자꾸 공격만 하다 골 먹으면 책임질껴’라고 항변한다면 달리 할 말도 없다. 현대축구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1970년대 초 요한 크라이프의 네덜란드가 토털 풋볼을 창안했을 당시 세계는 경악했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축구의 혁명이 달성되었으니까. 그 이후 세계축구는 이 토털 풋볼을 더 개량하거나 아니면 그에 대항하기 위한 기술적 변형들을 고안해 내는데 혈안이 되어 왔다. 지금은 어떤가. 결국 전원 수비는 하면서 전원 공격은 하지 않는 기이한 형태가 나왔다. 심지어 원조격인 네덜란드조차 이번 대회엔 단 세 명의 공격수만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이 나라가 네 경기에 올린 골 수는 겨우 세 골. 네덜란드가 시스템적으로 공격축구라는 것은 이미 선입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월드컵을 마치는 시점에 작금의 사태가 심히 유감스럽다. 축구가 구기가 아닌 격투기로 변모하면서 우리는 무용수 같은 과거 브라질 선수들의 체형보다는 람보 같은 차력사의 체구를 선호하게 되어 간다. 과거 축구가 지구상에 처음 태동했던 시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허진의 월드컵 스토리’는 이번 주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좋은 글로 지면을 빛내준 허진 님과 성원해주신 애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2002월드컵대표팀 미디어 담당관
현 독일대사관 참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