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3일 월드컵 토고와의 경기에서 상대선수의 파울을 이끌어내는 박지성. 연합뉴스 | ||
박지성은 청소년 시절 특출한 기량으로 각광을 받지는 않았으나 기본기만큼은 잘 단련된 선수였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처럼 대회마다 일정한 성적을 거둬야 하는 팀 현실에 부딪혀 기본 수준의 개인 기량을 한단계 더 높일 시간은 충분히 갖지 못했다.
박지성이 기본기를 다시 다져 기량이 서서히 만개한 것은 바로 수원공고에 진학하면서부터. 95년부터 현재까지 수원공고를 이끌고 있는 이학종 감독으로부터 뒤늦은 감은 있지만 초보적인 기술과 전술을 반복적으로 익히면서 공에 대한 집중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이는 창의적이고 조직적인 부분의 기량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박지성에게 기본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이 감독이 갖고 있던 축구 교본이었다. 이 교본은 이 감독의 초등학교 스승이 자필로 만들어 물려준 것. 이 감독은 박지성에게 수시로 교본을 보여주면서 쉽게 익힐 수 없는 기본기 노하우들과 훈련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부임한 지 5개월 되던 96년 2월 박지성을 만난 이 감독은 교본의 훈련법대로 제자를 조련해나갔다. 그중에서도 상대에게 볼을 뺏기지 않는 드리블과 패스, 그리고 볼을 갖고 있는 상대의 패스를 차단하거나 패스를 받는 상대를 견제하는 방법을 주로 교육했다. 네 가지 기술을 철저히 교본에 적혀 있는 훈련 방법 그대로 박지성에게 숙지시켰다.
이 감독은 “장대 등과 같은 장애물 혹은 선수를 좁은 간격으로 세워 놓고 이 두 가지 형태의 드리블 훈련을 지성이에게 많이 시켰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정지 상태가 아닌 패스나 리바운드된 볼에 빠르게 접근하고 그 볼을 드리블로 연결하는 동작의 연습도 드리블 훈련과 병행해 지도했다고 설명했다.
▲ 그가 고교 시절 기본기를 배웠던 교본. | ||
드리블이 길기는 했지만 2차 터치에서 상대보다 빨리 발을 내밀어 완벽한 오픈 찬스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냈고 결국 상대의 거친 파울을 유도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만한 이 드리블은 바로 고교 시절 때 교본의 훈련 방법대로 수백 번, 수천 번씩 훈련했던 상황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동료에 패스할 방향을 타고 수비수를 달고 드리블하거나 사이드라인 쪽에서 자신에게 온 패스를 곧바로 필드 중앙 쪽으로 감아 돌진하는 플레이 또한 이미 고교 시절 수시로 몸에 익힌 드리블 습관이다. 자신의 몸과 다리로 볼을 상대방에게 감추듯 드리블하거나 상대의 무게 중심을 이용, 드리블 방향을 선택하는 특유의 습관도 교본을 통해 익혔던 플레이다.
강력한 수비 능력도 고교 때 교본의 내용을 잘 소화했던 탓이다. 특히 박지성은 볼을 갖고 있는 상대의 드리블을 방어하거나 패스 길을 잘 차단하는 장점이 있는데 이러한 플레이도 교본의 내용을 충실히 자기 것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이 감독은 “원래 지성이가 수비할 때 볼만 응시하고 억지로 뺏으려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볼을 갖고 있는 상대를 수비할 때는 우선 패스 길을 막도록 위치 선정을 하고 항상 상대방과의 거리를 두 걸음 정도 유지하라는 교본의 내용을 보여주고 반복 훈련을 시켰더니 반칙 없이도 상대를 수월하게 막는 요령이 생겼다”고 전했다.
비록 고교생이었지만 초보적인 기술 습득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박지성. 이제 박지성 자신이 어린 선수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교본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