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 스타의 방황 여자축구 최고 스타 박은선의 대표팀 무단이탈을 놓고 축구계가 술렁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이번에 터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여자 축구 최고의 스타 박은선(서울시청·20)의 대표팀 무단이탈을 둘러싸고 여자 축구계가 술렁였던 것이다.
박은선은 지난 5월 25일 아시아선수권을 대비해 소집한 대표팀에서 두 차례나 팀을 무단으로 이탈, 대표팀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그리고는 지난 7월 6일 축구협회 상벌위원회에서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까지 받았다. 지난해 4월 “대학을 거쳐야만 실업을 갈 수 있다”는 규정을 무시하고 실업행을 결정했다가 연맹 주최 3개 대회 출전 금지 처분을 받은 박은선은 이번이 두 번째 징계다.
분명 박은선의 행동은 대표 선수로서 품위를 저버리는 일로 징계 처리가 불가피했다. 이로 인해 한국 여자 축구를 대표하는 박은선이 월드컵 진출 티켓이 걸린 중요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박은선이 직접 밝힌 대표팀 이탈 배경이다. 박은선은 사태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매우 구체적인 정황을 들며 자신이 대표팀을 떠나고자 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처음부터 대표팀에 합류하고 싶지 않았다” “대표팀에서는 왕따 된 기분이었다”는 다소 격한 심경까지 토해내고 있다. 박은선과 대표팀 사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단 박은선과 소속팀 서정호 감독으로부터 대표팀 이탈을 결심하기까지의 전말을 들어봤다. 서 감독에 따르면 박은선은 이번에 소집되기 전부터 대표팀 훈련에 참가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고교 재학 시절과는 달리 여자 연맹 규정을 무시하고 실업에 입단하고부터 대표팀 관계자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달라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 지난해 8월 동아시아컵 중국전. | ||
소식을 들은 서 감독은 6월 1일 박은선과 전화 통화를 했다. 서 감독은 “우선 1차 훈련만 버텨라. 구단하고 상의한 후 조치를 취해주겠다”고 달랬으나 결국 박은선은 파주를 떠나고 말았다.
주변의 설득으로 박은선이 대표팀 훈련에 복귀한 것은 6월 7일. 그러나 팀에 복귀하자마자 박은선은 또 다시 흔들렸다. 독방이 배정되고 개인 휴대폰까지 압수당하자 혼란스러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것. 결국 새벽 1시 30분 박은선은 다른 휴대폰으로 서 감독에게 “죽을 것 같다. 힘이 든다”는 메시지까지 보냈다고 한다.
급기야 사태의 심각성을 판단한 축구협회는 6월 9일 안종관 대표팀 감독과 박은선, 그리고 박은선의 부모, 서 감독을 호출했다. 서 감독과 안 감독은 이 자리에서 박은선의 1차 훈련 제외 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우선 선수가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1차 훈련은 제외시켜 달라”는 서 감독과 “박은선만 특별대우할 수 없다. 원칙대로 한다”는 안 감독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고 한다.
대표팀에서 마음이 멀어질 대로 멀어진 박은선은 서 감독, 부모와 함께 식사를 한 뒤 또 다시 자취를 감췄다. 사흘 후 서 감독은 수소문 끝에 박은선을 찾아냈으나 이미 대표팀에서는 6월 9일 박은선을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최종 의견이 모아졌고 한 달 여 후인 지난 7월 6일 협회 상벌위원회는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박은선은 지난 6월 30일 지인에게 대표팀 이탈에 대한 심경을 자세히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박은선은 이메일을 통해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을 이탈한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면서도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박은선은 일본과의 경기에서 상대에게 사타구니 쪽을 차여 타박상을 입었다고 한다. 당시 박은선은 감독과 코치 등에게 부상 부위에 통증이 있다고 전했고 그러나 다음 경기가 북한과의 일전이라 그대로 경기 출전했다. 박은선의 말대로라면 후반전은 통증이 심해 울면서 경기를 뛰었다고 한다.
대회가 끝난 후 박은선은 절뚝거리며 소속팀인 서울시청에 복귀했고 대표팀으로부터 부상에 대한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한 서 감독은 협회에 강력히 항의했다. 박은선은 병원에서 사타구니 근육 파열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서 감독과 서울시청 구단의 항의가 있자 당시 대표팀 관계자들이 “박은선의 부상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다른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박은선은 “나는 분명 아프다고 말을 했는데 대표팀에서는 전혀 들은 바 없다며 이상한 아이로 내몰았다”고 전했다.
박은선은 대표팀 분위기 역시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대표팀은 현대제철 팀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박은선의 주장이다. 대표팀은 현대제철 출신인 안 감독이 전임 감독을 맡고 있고, 현대제철의 이문석 코치가 수석코치다. 또한 최종 엔트리에 선발된 20명의 선수 중 11명이 현대제철 소속이다.
박은선은 “훈련, 숙소 생활 분위기가 그 팀(현대제철) 분위기로 흘러가고 ‘왕따’된 기분이 들었다. 대표팀인지 현대제철 단일팀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아마 나 아닌 다른 선수들에게 물어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는 심경을 밝혔다.
월드컵 출전 티켓이 걸린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박은선이 불참하게 됨으로써 가뜩이나 공격진의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대표팀은 비상이 걸린 상태. 그러나 이번 월드컵 출전 티켓 확보 여하에 상관없이 박은선을 둘러싸고 싹튼 대립과 반목은 여자 축구계가 반드시 수습해야 할 숙제임에 틀림없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