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요미우리에서 맹타를 휘두르는 이승엽(위)과 풋내기 타자 시절의 이승엽. 연합뉴스 | ||
그러나 아버지 이춘광 씨는 여전히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이 내일과 다를 수 있는 게 운동선수들의 성적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이 씨는 부쩍 달력을 들춰보는 횟수가 잦아졌다. 8월 초 일본으로 건너가 아들 이승엽을 만날 계획인 것이다. 결혼도 하고 2세까지 얻은 아들이지만 아버지한테 아들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부모가 쓰는 별들의 탄생 신화, 이승엽 편의 마지막 내용이다.
처음에 이 연재를 시작할 때는 망설임이 많았다. 성격적으로 드러내는 걸 싫어하는 터라 선수도 아닌 아버지가 뭔가를 쓴다는 게 영 자신이 없었고 좀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을 곱씹으면서 내가 더 많은 교훈도 얻었고 반성도 많이 했다.
승엽이가 팀의 연패로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는 <일요신문>에 연재된 내용을 복사해서 일본으로 보냈을 정도다. 서로 이전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용기도 갖고 야구의 의미를 되새김질하자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한 마디로 처음의 시작은 어려웠지만 이 코너를 통해 내가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말이다.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바로 지금의 승엽이를 있게 해준 스승님들이다. 스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말하는 형식적인 말이 아니다. 진심으로 그분들의 존재를 감사히 생각하고 승엽이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사랑에 대해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승엽이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세게 반대했던 날 설득시켰던 신용성 선생. 그 분은 동덕초등학교에 다니던 승엽이를 야구부가 있는 중앙초등학교로 전학시키자며 엄청난 회유를 했었다. 그때 갈등하며 망설이던 나에게 그분이 마지막으로 던진 말을 잊지 못한다. “선생은 거짓말할 줄 모릅니다.”
▲ 삼성 입단 초기 ‘투수 이승엽’을 타자로 전향시킨 우용득(왼쪽) 백인천 씨의 삼성 감독 시절 모습. | ||
승엽이는 진학을 할 때마다 스카우트 경쟁에 시달렸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진학을 앞두고 프로팀으로부터 엄청난 구애 공세를 받기도 했다. 어느 학교에서는 신문지로 싼 돈 뭉치를 몰래 집에 놓고 갔는데 펴 보지도 않고 도로 보낸 뒤에 그 학교랑은 상대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야 말로 행복한 비명을 질렀던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삼성 라이온즈에 투수로 입단하자마자 승엽이는 팔꿈치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재활 기간 동안 공을 던질 수 없게 되자 몸이 근질근질했던 승엽이는 운동장에서 방망이에 공을 맞추는 ‘놀이’로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우용득 감독이 그 모습을 보게 됐고 타격 코치에게 승엽이의 타격 솜씨에 대해 잘 파악해 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한다. 나중엔 최무영 스카우트까지 가세해서 승엽이의 타격감을 높이 평가했고 급기야 승엽이에게 타격 코치가 타자 전향 의사를 물어봤지만 승엽이는 투수 외엔 관심이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단다.
그러나 재활 기간이 계속되자 승엽이는 상반기 때에만 타자로 서기로 했고 대타로 출장하면서 경기 감각을 잃지 않으려 했다. 한번은 선동열 감독과 맞대결을 펼쳤는데 ‘국보 투수’의 공을 피하지 않고 안타를 쳐내 기사화됐을 정도다. 그 해 타율이 2할8푼5리. 승엽이가 공 던지기보다 공 맞추기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는 단초가 됐다.
사령탑이 백인천 감독으로 바뀌면서 승엽이는 더 이상 마운드에 오를 수 없었다. 백 감독이 승엽이의 자질을 확인한 뒤론 투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타자에만 전념하라고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승엽이는 백 감독 밑에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날개를 펴 나갔다. 팔꿈치 수술로 투수 생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타자로의 전향은 승엽이의 인생을 백팔십도로 바꿔 놓은 일대 계기가 됐다.
지금도 백 감독은 승엽이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번에도 요미우리 경기를 해설하는 도중 승엽이의 타격 폼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즉시 전화로 지적을 해줬다고 들었다. 그 후 승엽이가 홈런포를 터트리며 제자리를 찾아갔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일일이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승엽이가 평생 감사해야 할 스승은 한두 분이 아니다. 승엽이가 스승님들에게 보은하는 길은 야구장에서 좋은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쓰게 해준 내 아들 승엽이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