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민은 공을 던질 때 가장 ‘그’답다. 사진제공=한화이글스 | ||
지난해 조성민이 한화 이글스에 입단, 국내 프로야구에 데뷔한 뒤 주변 관계자들로부터 나온 증언이다. 조성민. 화려한 이름이다. 고려대 재학 시절 잘 생긴 외모와 빼어난 구위로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녔다. 9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뒤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더니 톱 탤런트 최진실과 ‘세기의 결혼’에 골인하며 다시 한 번 세간에 화제가 됐다.
이후 최진실과의 파경, 재산을 둘러싼 분쟁, 개인사업 실패 등 풍파를 겪은 뒤 결국 야구판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주로 중간 계투로 뛰며 2승 2패, 방어율 6.52를 기록했다. 만족스런 성적은 아니지만 ‘야구인 조성민’으로 돌아오기엔 충분했다. 지난 4월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으며 다시 실의에 빠졌던 그가 최근 2군 경기를 통해 만족스런 성적을 올리며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다.
# 복귀 카운트다운
지난해 계약금 없이 5000만 원이란 ‘초라한’ 연봉을 받았던 조성민. 올해 1억 110만 원의 껑충 뛴 몸값으로 재계약하고 두 번째 시즌을 화려하게 맞이하려 했다. 하지만 지난 2월 하와이 전지훈련 때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찾아들었다. 2군에서 개막을 맞았지만 통증이 그치질 않았고 결국 4월 18일 일본에서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6월부터 하루 400개의 공을 던지는 강훈련을 하며 몸을 만든 결과 복귀 시점이 빨라질 전망이다. 지난 15일 2군 경기에서 삼성을 상대로 첫 실전 등판을 했다. 3이닝 동안 볼넷 1개, 2안타를 기록하며 무실점. 직구 스피드는 135㎞에 머물렀지만 70~80% 수준의 몸상태를 감안하면 합격점을 줄만했다. 한화 김인식 감독은 후반기부터 조성민을 중간계투로 투입한 뒤 본인 희망사항인 선발진 합류도 검토할 계획이다.
지난해 입단 때 조성민은 유니폼 넘버 99번을 택했다. 마치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번호였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등번호를 1번으로 바꿨다. 현재 99번은 ‘괴물 신인’ 류현진이 달고 있다.
조성민은 구단 프런트에게 “내 휴대폰 번호를 절대 외부에 누출시키지 말라”는 당부를 남긴 채 야구장 밖에선 철저히 잠행하고 있다.
기자가 조성민과 처음 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02년 연말이었다. 당시는 조성민이 성격 차이로 최진실과 결별하고 언론을 통한 지루한 입씨름이 막 시작된 때였다. 신문사에선 연예부 기자가 최진실을 커버하고, 야구부 기자가 조성민을 취재하기로 결정이 났는데 어쩌다보니 기자가 그 임무를 맡게 됐다.
그 당시에는 한 달 넘게 전화 통화로만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조성민이 취재진과 대면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었다. “야구기자? 그러면 나를 연예인의 남편이 아닌 야구선수로서 생각하고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조성민은 속에 있는 얘기를 하나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당시 조성민과 최진실의 떠들썩했던 공방전에선 조성민은 결과적으로 약자였는지도 모른다. 개인 사업가 신분이었던 조성민은 스스로 모든 상황에 대처해야 했지만 최진실은 거대 연예기획사 소속으로 여러 면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성민과 처음 대면한 것은 그후 6개월 정도가 지난 뒤였다. 2003년 7월 국내프로야구 드래프트에 참가하려 했던 조성민은 받아주는 구단이 없어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미리 약속을 정하고 와이드인터뷰를 위해 슈크림빵 사업을 하고 있던 조성민을 2003년 7월 4일 서울 강남역 근처의 로드 매장에서 직접 만났다.
인터뷰는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이혼문제 이후 한 손님이 빵을 잔뜩 사더니 매장에 집어던지고 욕을 하며 간 적도 있다”며 씁쓰레한 웃음을 지을 때에는 ‘조성민도 결국 여느 일반인과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었다. “이승엽과 꼭 대결을 하고 싶었는데 무산돼서 안타깝다”고 했을 때에는 마치 갓 야구를 시작한 소년과도 같았다.
그 와중에도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서의 자존심은 확실했다. 조성민은 당시 “LG 트윈스가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입단을 논의해보자고 했는데 내가 반품처리된 물건도 아니고 기분이 나빠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럴 입장이 아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이상 초라해지기 전에 스스로 그만두고 싶다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 지난해 8월 조성민이 첫 등판한 모습. | ||
조성민은 같은 팀 정민철과 둘도 없는 친구다. 정민철은 99년 한화를 우승으로 이끈 뒤 2000년부터 2년간 요미우리에서 활약했다. 한화의 에이스가 요미우리에선 실력만큼 대접받지 못하며 2군에서 전전하는 신세가 됐었다. 그때 먼저 요미우리에 몸담고 있던 조성민이 정민철을 잘 보살펴줬다. 낯선 타국에서의 설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조성민이 정민철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데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조성민이 한화에 입단하자 먼저 복귀해있던 정민철이 물심 양면으로 도와준 것이다. 입단 초기 조성민의 유니폼이 마련돼 있지 않을 때는 정민철은 자신의 유니폼을 빌려주며 사진 촬영을 돕기도 했다.
조성민이 국내 프로야구에 데뷔하기까지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인물은 김인식 감독이다. 지난해 초반, 조성민은 모 케이블방송사의 야구해설위원으로 일했다. 김인식 감독은 지금도 지난해 상황을 돌이킬 때면 “걔(조성민)가 해설한답시고 돌아다니는데 눈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었거든. 정말 야구를 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눈빛이더라구”라고 말한다. 간절한 눈빛이 결국 ‘재활공장 공장장’으로 이름난 김인식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던 셈이다.
조성민이 올 후반기에 복귀하더라도 에이스급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하는 야구 관계자들은 없다. 하지만 야구선수로서, 한 인간으로서 온갖 풍파를 겪은 그가 1군 마운드에서 다시 던지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