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과 비슷한 길을 걷다가 ‘먼 길’을 돌아온 롯데 이대호가 이승엽을 이을 거포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
지난해 시즌 종료 후에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극락암으로 `체중 감량 훈련’을 떠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기를 피하고 나물만 먹으며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스윙을 한다. 올 시즌에는 8월 2일 현재 홈런 17개로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가 홈런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어쨌든 이대호로선 생애 첫 홈런왕 타이틀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점이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는 점에서 이승엽(요미우리)과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체중과 관련된 이대호의 솔직한 심정과 그가 `포스트 이승엽’으로 각광받을 찬스에서 한 차례 좌절했던 기억, 그리고 다시 ‘포스트 이승엽’으로 거론되는 까닭을 한번 들여다봤다.
▶▶살 얘기는 이제 그만!
이대호는 체중 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체중 때문에 성적에 대한 평가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홈런을 펑펑 쳐대면 “체중이 많이 나가서 힘이 좋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못 치면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가서 둔해졌기 때문”이라는 악평이 나온다. 살을 빼고 나서 잠시 부진하면 이번엔 “너무 체중이 줄어서 힘이 빠졌다”는 식이다.
대체 어쩌라는 말인가. 당사자로선 이만저만 고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요즘 이대호는 취재진에게 “어지간하면 그 얘기(체중)는 그만하시죠”라며 부탁하기도 한다.
▶▶출발은 이승엽과 닮은꼴
이승엽과 마찬가지로 경남고 출신의 이대호도 본래 투수 출신이다. 지금도 경기 전 몸을 풀 때면 다른 야수들이 가벼운 캐치볼과 스트레칭을 하는 데 반해 이대호는 100m 롱토스를 하는 희한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롱토스를 안하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는데 이건 전형적인 투수들의 증상이다.
이대호는 2001년 투수로 롯데에 입단했는데 전지훈련지에서 지나치게 의욕을 보이다가 어깨를 다쳤다. 그래서 그해 전반기를 허송세월로 보냈다. 2001년 올스타전 이후 당시 롯데 우용득 감독이 “타자로 한번 뛰어보는 게 어떻겠나”라고 제안하면서 이대호의 타자 전환이 이뤄졌다. 우용득 감독은 삼성 시절 투수 출신 이승엽을 타자로 전환시킨 주인공이라 더 흥미롭다.
타자 전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찬스가 왔다. 2001시즌 종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롯데의 외국인타자 펠릭스 호세가 삼성 배영수를 마운드 위에서 구타하는 사건을 일으킨 뒤 출전정지 통보를 받았다. 퇴출당한 호세는 곧바로 짐을 싸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호세의 ‘대타’로 이대호가 2군에서 불려 올라왔다. 타자로서 꿈을 펼치기 시작한 시점이다.
6경기서 8타수 4안타, 타율 5할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여기까지는 이승엽의 경우와 그리 다르지 않은 셈. 그러나 2002년부터 백인천 감독이 사령탑을 맡으면서 이대호의 꿈은 날아갔다. 백 감독은 “지나치게 체중이 많이 나간다. 선수도 아니다”는 혹평과 함께 이대호를 2군에 내버려둔 채 방치한 것이다. 당시 야구인들 사이에선 “이대호를 2군에서 썩히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라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2003년까지 이대호는 2군을 전전했다.
▶▶‘은인’양상문 감독
2004년 양상문 감독이 롯데를 맡고 난 뒤 상황이 달라졌다. 이대호는 그해 타율 2할4푼8리에 20홈런을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타율 2할6푼6리에 21홈런으로 성장세를 보여줬다. 특히 지난해 타점(80개) 부문에서 기량 향상이 돋보였다. 강병철 감독 휘하에서도 이대호는 신임을 받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올 시즌 빛을 발하고 있다.
8월 2일 현재 타점 부문에선 53개(3위)로 57타점의 KIA 장성호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3할2푼7리의 타율은 현대 이택근(0.333)에 이은 2위. 장타율은 5할6푼8리로 부동의 1위에 올라있고 최다안타 부문에서도 87개로 공동 4위다.
프로야구에선 타자가 홈런-타율-타점 3개 부문을 모두 석권하는 것을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한다. 타격 중에서도 주요 부문의 3관왕에 오를 경우 특별한 호칭을 부여하는 셈이다. 한국프로야구에선 지난 84년의 삼성 이만수 이후 `트리플 크라운’이 한 차례도 없었다. 올해 이대호는 22년만의 `트리플 크라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올 시즌부터 3루에서 1루로 포지션 이동을 한 게 타격에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올 초 전지훈련 때부터 밀어치는 습관을 들인 게 적중했다. 이대호는 과거 두산의 우즈처럼 오른쪽으로 밀어쳐서 홈런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전에는 타율 부문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지만 올 시즌 정확성이 배가되면서 이 문제 역시 해결됐다.
▶▶다시‘포스트 이승엽’
야구장을 찾는 팬들은 대부분 투수의 호투보다는 시원한 홈런을 원한다. 이 때문에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하루빨리 이승엽의 대를 이을 거포가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로선 이대호가 이승엽의 명맥을 이어갈 뚜렷한 후보다.
95년 삼성에 입단한 이승엽은 5시즌째인 99년에 54홈런을 치며 홈런킹으로 자리 잡았다. 2001년 데뷔 후 6시즌째를 치르고 있는 이대호는 이승엽에 비하면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그러나 올 시즌 그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년쯤 프로야구는 또 다른 폭발적인 홈런쇼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