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 씨는 안현수와 여자친구 신단비 씨(왼쪽네모)의 만남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거두지 못하면서도 아들을 믿는다며 아예 공개 데이트를 하게 했다고 한다. | ||
안현수가 미니홈피에 각오를 다지기 위해 올려놓은 글이다. 쇼트트랙에선 더 이상 이룰 게 없을 것 같은 안현수지만 여전히 그는 새벽부터 빙상장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놀고 싶고 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분신과도 같은 스케이트를 지치며 또 다른 기록과 도전을 위해 달리는 것이다.
이런 안현수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면 아마도 프로스포츠 선수보다 더 많은 팬들(그중 대부분이 여성 팬)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금까지 홈페이지 방문자 수만 117만 명이 넘는다.
어느새(?) 20대 초반을 넘어선 아들에게 이성의 존재를 인정해줘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머니와는 또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1985년 11월 23일생. 키 172㎝, 체중 63㎏에 불과한 현수는 나에게 늘 ‘아이’ 같은 존재였다. 우리나라 나이로 22세가 됐지만 성인이라는 느낌보단 여전히 늘 돌봐줘야 하는 어린아이 같기만 했다. 그런 아들이 2년 전부터 여자 친구를 노출시켰다. 처음에는 그저 친하게 어울리는 학교 친구인 줄로만 알았다. 워낙 여학생들로부터 팬레터를 많이 받았고 집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을 만큼 인기가 많아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대회에서 좋은 성적이 나올 때마다 언론의 관심은 현수보다 여자 친구의 존재에 쏠렸다. 기자들의 취재 경쟁은 집요했고 결국 지난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신)단비가 인터뷰 형식을 통해 언론에 공개되고 말았다.
솔직히 아버지의 입장에선 아들의 여자 친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조금은 걱정이 됐다. 아직 학생이고 서로 좋은 감정으로 만남을 갖고 있을 뿐인데 누구누구의 여자 친구로 공식화되는 부분이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전 어느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여친’을 공개하자마자 불특정 다수의 비난과 과도한 관심을 이겨내지 못해 헤어졌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현수의 상황이 불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어차피 노출된 거, 아예 공개적으로 데이트를 즐기라는 것이었다. 단비를 집으로 초대해서 가족들과 같이 어울리게 하는가 하면 둘이 데이트를 할 때 사전에 ‘보고’만 하면 무조건 오케이를 했다.
▲ 안현수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진 중국선수 장핑. | ||
그래도 신기한 건 젊은 세대라 그런지 주위의 시선이나 관심들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때론 즐기고 잘 이겨낸다는 사실이다. 나 또한 그렇게 지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예뻐 보이면서도 현수에게 잔소리처럼 좋은 친구로만 지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우연히 두 사람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봤다. 서로에 대해 ‘내 남자’ ‘내 여자’ ‘내꺼’로 공식화시킨 표현법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해하기로 했다. 어차피 두 사람의 인생인데 부모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단비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솔직히 난 마음이 끌리는 현수의 팬이 있다. 이 점은 현수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몇 년 전부터 현수에게 팬레터와 사진들을 보내며 애달픈 마음을 전하고 또 전했던 중국의 쇼트트랙 선수 장핑이다.
중국 베이징에 살고 있는 장핑은 현수가 중국에 대회 출전차 건너가면 항상 경기장에 부모님과 함께 나와 응원을 하는 것은 물론 사진을 찍고 선물을 전하며 간접적으로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현수에게 보낸 편지가 중국어로 씌어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번역해서 현수에게 읽어주며 내용을 보게 됐는데 글을 쓰는 솜씨는 물론이고 현수를 걱정하고 용기를 내라는 격려의 말들은 절로 마음이 푸근해질 정도다.
외모 또한 모델을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고 매력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현수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
아들한테 이성이 생기면서 부모는 조금씩 서운해지는 법인가 보다. 조금씩 의견이 엇갈리고 일상도 달라지면서 이전과는 달리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도 현수가 중심을 잘 잡고 있다고 믿는다. 쉽게 빠지고 쉽게 벗어나는 스타일이 아니라 운동을 가장 중요시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선 잠시 이성을 잊고 지낼 수 있는 인격이 있기에 아버지는 그걸 존중해줘야 할 것 같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