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규는 모든 감독들이 같은 팀에 데리고 있길 원하는 선수다. 실력뿐만이 아니라 파이팅이 좋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기 때문이다. 이병규는 왠지 ‘항상 장난치는 선수’라는 이미지로 팬들에게 각인돼 있다. 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혹은 공수교대 때 항상 웃으며 동료들과 익살스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포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 때문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볼 때도 있었다. LG 구단 직원들의 평가에 따르면 실제의 이병규는 때론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돌아서는 책임감 강한 선수다.
▶두 얼굴의 사나이
이병규는 경기 중 더그아웃에서 농담을 많이 하는 편이다. 더그아웃 맨 끝 쪽에 앉아 반대편 끝 쪽의 박용택 등 친한 후배들과 실없는 농담을 툭툭 주고받으면 형편없이 지고 있는 경기에서도 팀 분위기가 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역전승하면 네가 통닭 열 마리 쏴라!”하는 식이다. 여기까지는 일반 팬들이 알고 있는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지난 2004년 1년간 주장을 맡은 뒤 팀내 리더로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중요한 상황에선 후배들을 불러 모아 놓고 확실하게 자기 의견을 전달한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잖아”하면서 따끔하게 혼도 내고 선을 그어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이병규가 마냥 웃기만 하는 선배인 줄 알았던 후배들도 이제는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그를 찾는다.
몸에 좋은 한약을 선물받으면 후배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전지훈련지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지 않고 방황하는 후배들을 발견하면 일단 따로 방으로 부른다. 타이르고 윽박 지르기도 하면서 후배들을 관리해주는데 이때 이병규는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사나이가 된다는 게 구단 직원들의 증언이다.
▶마무리는 포장마차
두주불사 스타일이다. 다른 구단 선수들과도 워낙 친하기 때문에 술자리도 많은 편이다. 물론 정규시즌 동안에는 되도록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오프시즌에는 친구를 만나면 새벽별을 볼 만큼 마시곤 한다.
몇 년 전 12월의 일이었는데 기자가 우연히 이병규를 비롯한 프로야구 선수들과 사석에서 만나 술을 마신 일이 있었다. 이병규가 직접 제조한 폭탄주가 처음부터 끝까지 돌았는데 술을 어느 정도 마실 수 있다고 자랑하던 기자도 술자리가 끝날 때쯤에 “제발, 이젠 그만”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이병규의 마지막 멘트에 기겁을 하고 말았다. “자, 이제 포장마차로 옮겨서 딱 한잔만 더합시다!”
이병규는 어느 곳에서 어떤 술을 마시든 마지막에 포장마차에서 소주로 마무리하는 습관이 있다. 물론 그때까지 버텨낼 술 상대는 그리 많지 않지만 말이다.
올해 말 FA가 되더라도 이병규가 해외 무대에 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74년생으로 올해 만 서른두 살인 이병규가 지금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뛰는 것은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부담감이 있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반면 국내에 남는다면 수십억 원짜리 계약이 보장된다.
이병규는 실은 미국 구단들의 아시아담당 스카우트로부터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한국인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이승엽, 현대 시절의 심정수가 홈런포 때문에 미국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면 이병규는 폭넓은 외야 수비 능력과 히팅 능력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어떤 코스의 공이라도 맞힐 수 있는 방망이 컨트롤 능력과 장·단타를 두루 갖춘 점이 이병규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대졸 출신이기 때문에 FA가 되는 시점이 너무 늦어버렸다. 만약 이병규가 고졸 신분으로 프로야구에 입단했고 3년 전에 FA가 됐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리그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건성건성’ 수비의 진실
워낙 타고난 기량을 갖췄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다. 올 시즌 중반 LG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순철 전 감독은 “병규는 수비를 너무 성의 없이 한다”는 농담을 자주 했다.
실상은 이랬다. 다른 외야수들이 기를 쓰고 달려가서 가까스로 잡아낼 타구를 이병규는 손쉽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타구음을 듣고 곧바로 방향과 낙하지점을 예상하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타자가 치는 순간 이병규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때문에 항상 쉽게 플라이 타구를 잡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여유로운 모습이 되레 건들건들한 동작으로 비치기도 한다. 한 마디로 대충대충 수비를 한다는 얘기를 듣는 것인데, 결국 수비 능력이 좋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어깨도 강하기 때문에 다른 팀 주루-작전 코치들이 가장 싫어하는 외야수로 주저 없이 이병규를 꼽는다. 어렵게 3루에서 주자를 돌려 홈대시를 시켰는데 이병규의 외야 송구 한방으로 아웃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취미는 아이 보기
이병규는 지난 2003년 12월 류재희 씨와 결혼했다. 요즘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아들과 장보기”라는 답이 돌아온다. 하나뿐인 아들 승민 군과 함께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거나 집안에서 함께 뒹구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승민 군이 잠실구장 나들이를 하는 날에는 이병규가 더욱 힘을 내서 안타를 펑펑 터뜨리곤 했다.
이병규는 대화 상대를 유쾌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야구장에서 항상 즐겁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에게도 웃음을 나눠주는 스타일이다. “후배들이여, 더 까불어라.” 얼마전 이병규가 잠실구장에서 후배들에게 던진 이 한마디에는 명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웃으며 야구할 때 최상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다는 믿음. 프로 10년차 이병규의 야구 철학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