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1일 귀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영표 선수.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우선 이탈리아 언론 등에서 제기한 종교적인 문제다. 이탈리아 언론은 기독교도인 이영표가 카톨릭의 중심인 로마에 오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밝혔으나 논거가 불충분하다. 로마가 카톨릭의 본산이라는 이유로 이영표가 이적을 거부했다면 처음부터 이적 논의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이영표의 에이전트인 지쎈의 김동국 대표는 “그런 식의 주장이라면 영국은 성공회다. 종교 차이 때문이란 억측은 상식 이하의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김 대표의 말처럼 그렇게 편협하게 생각했다면 에인트호벤에서 토트넘 홋스퍼 구단으로의 이적도 거부했어야 한다. 왜냐하면 토트넘 홋스퍼는 유대인이 운영하는 구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 차이가 아니라 개인적인 신앙심과 관련돼 이번 일이 결정됐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영국의 일간 <데일리 미러>의 마틴 로저스 기자는 “종교에 대한 시각차는 분명 아니라고 토트넘 구단도 파악하고 있다”면서 “개인적인 신념이나 신앙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이적을 놓고 기도하는 중에 어떤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 비종교인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종교인이라면 이영표의 입장과 결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로저스 기자는 토트넘 홋스퍼를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영표는 왜 속시원하게 밝히지 않는 것일까. 이영표는 자칫 비 종교인들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에 대해 무척 예민한 상황이다. 같은 종교인이라면 설명이 가능한 것도 비 종교인들 입장에선 ‘이상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기보단 ‘개인적 이유’라며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돈이다. 그러나 이영표의 개인 성향으로 봐서 돈 문제 때문에 일을 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AS로마가 제시한 연봉과 이적료는 토트넘에 비해 높다. 오히려 앉은 자리에서 상당한 금액을 챙길 수 있었다. 이영표가 더 많은 돈을 바랐다면 AS로마로 갔어야 했다. 한국 나이로 서른살의 이영표가 앞으로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돈 문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이영표의 구단내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영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말하지만 토트넘은 이영표를 내보내려했던 것이 사실이다. 마틴 욜 토트넘 감독은 이영표를 이적시키고 위건 애슬레틱에서 뛰고 있는 파스칼 심봉다를 영입하려는 시나리오를 계획했다. 로저스 기자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심봉다는 위건을 떠나 토트넘으로 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영표가 떠나면서 심봉다의 이적이 이뤄졌는데 이영표가 계약 직전에 팀 잔류를 선언하는 바람에 토트넘 측만 부담을 떠안게 됐다”고 밝혔다.
이영표는 왼쪽의 주전 풀백으로 뛰는 에코토와 오른쪽 윙백으로 뛸 예정인 심봉다와 피치 못할 자리 다툼을 하게 됐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영표가 자칫 잘못하면 왼쪽은 물론 오른쪽에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교체 멤버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토트넘이 이영표를 부진해서 이적시키려 했다기보다는 좀 더 좋은 기량을 지녔다고 판단된 심봉다를 영입하려 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영표의 미래를 어둡게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로저스 기자는 “축구선수라면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팀인 AS로마행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영표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이번 일로 인해 이영표에 대해 새로운 호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변현명 축구전문 리포터 blog.naver.com/ddaz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