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핌 베어벡 감독 | ||
핌 베어벡 한국축구대표팀 감독(50)의 지도력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2002한일월드컵에서 수석코치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의 ‘4강 신화’를 창출한 주역. 2006독일월드컵 때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전략 전술을 주도했던 핵심 참모. ‘만년 2인자’였던 베어벡 감독이 지난 7월 한국의 사령탑에 올랐다.
베어벡 감독이 참모로서는 최고의 능력을 보여줬지만 팀을 이끄는 사령탑으로선 이제 초보에 불과해 과연 그가 태극전사들을 잘 다스릴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까지 했던 히딩크 감독과 아드보카트 감독의 명성이 너무 커 ‘베어벡 감독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란 일종의 편견이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조직에서나 ‘넘버 원’과 ‘넘버 투’의 차이는 있게 마련.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넘버 원이 되지 못할 수도 있는 게 세상의 이치다. 조직을 휘어잡고 흔드는 동물적 본능과 카리스마가 없다면 보스가 돼도 무능한 지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일단 외관상으론 초보 베어벡 감독의 초기 행보는 무난하다. 베어벡 감독의 지휘아래 한국은 2007아시안컵 B조 예선에서 2승1무를 거뒀다. 대만을 3-0, 8-0으로 완파했고 이란과는 1-1로 비겼다.
그러나 가야할 길도 멀다. 수석코치 땐 감독이 정확한 결정을 내리도록 다양한 정보 및 의견만 제시하면 된다. 최종 판단은 감독의 몫. ‘베스트 11’의 구성과 선수 교체 타이밍, 전략 전술의 운용은 감독이 해야 한다.
지난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 경기. 한국은 설기현(레딩 FC)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다 후반 인저리타임 수비실책으로 뼈아픈 동점골을 내줘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 지난 2일 이란전에서 통한의 동점골을 내준 직후 양팀 선수들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용수 KBS 해설위원의 분석이다. 1점차로 앞서고 있다면 경기 종료 5~10분을 남겨놓고 수비라인에 대한 재정비 작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컨디션이 괜찮은 김영철(성남)을 미리 투입해 집중력이 떨어진 김상식(성남)을 빼내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타이밍을 놓쳤고 결국 김상식과 골키퍼 김영광(전남)의 판단 미스로 어이없게 골을 내줬다는 얘기다. 수비수들에게 “위험 지역에선 볼을 걷어내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미흡했다. 그만큼 코치와 감독의 역할은 다르다.
대표팀 훈련 때의 모습을 보자. 베어벡 감독은 훈련프로그램을 모두 직접 짜고 콘(그라운드에 위치를 표시하는 도구)을 들고 다니며 미니게임 장도 직접 만든다. 히딩크 감독과 아드보카트 감독이 멀리서 당시 베어벡 코치가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지켜보며 간간이 문제점을 지적해주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압신 고트비 코치와 홍명보 코치가 보좌하고 있지만 훈련의 모든 것은 베어벡 감독이 진행하고 있다. 오히려 고트비 코치와 홍명보 코치가 베어벡 감독이 선수들을 열심히 훈련시키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개인적 성향에 따라 지도 스타일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코치들에게 세부적인 것을 맡긴 뒤 큰 그림을 그리며 최종 판단을 내리는 전형적인 유럽형 축구감독들의 스타일과는 분명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다.
히딩크 감독 같은 쇼맨십과 카리스마도 아직 엿볼 수 없다. 베어벡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과감한 세대교체를 실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훈련 멤버로 유망주들을 대거 뽑아 언론의 조명을 받았지만 결국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토트넘 홋스퍼), 설기현 등 해외파와 기존 대표 선수들 위주로 팀을 짰다. 대표팀 엔트리를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구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만 같은 약체에까지 베스트 멤버를 투입하지 말고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 선수들에 대해 한국 지도자들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베어벡 감독의 이런 모습은 ‘프로’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스타플레이어가 바로 스타 감독이 될 수 없듯이 명코치가 명감독이 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도 감독 초기시절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천재는 만들어진다고 했다. 명장도 마찬가지다. 베어벡 감독에겐 시간이 더 필요하다. 매 경기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한국 팬들의 아우성 속에 초보 베어벡 감독이 명장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전망이다.
양종구 동아일보 체육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