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기사가 나오기 며칠 전 미국에서 전화가 왔다. 정일미 프로였다.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대회를 마치고 다음 대회까지 자동차로 8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이동을 하는 도중에 모처럼 전화기를 잡았다고 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내가 골프를 잘 쳐야죠. 그래야 할 말도 제대로 하지. 이제 우승만 한 번하면 되는데…”라는 말이 나왔다.
선수 출신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회장이 나온다면 정일미가 영순위 후보로 꼽힌다. 회장은 돈 많은 기업체 오너가 맡는다고 하면 최소한 선수 출신 최고 자리인 ‘전무’는 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한국 그린 여왕을 수차례 했고, 서른을 넘긴 나이에 세계 최고봉인 미LPGA에 진출하는 ‘아름다운 도전’을 하고 있다. 대학도 졸업했고 학식 높은 부모님 밑에서 가정 교육도 잘 받았고 재력도 있다. 여기에 ‘스마일 퀸’이라는 별명답게 이미지도 좋다.
하지만 정일미가 선수 출신 전문 골프 행정가로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리더십’이다. 잘못되거나 부당한 일을 보면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다. 똑똑하고 판단력이 좋은 것이다. 친절하고 이해심도 커 이것저것 의논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지난해 9월에는 모래알 같던 한국 선수들을 한 명 한 명 찾아 2만 6000달러라는 자선 기금을 모았다. 이를 전달하니 미LPGA 전체가 깜짝 놀랐다. 정일미가 비벤스 회장에게 들이댈 수 있는 것도 이런 리더십을 보여준 바 있기 때문이다.
정일미는 하고픈 일이 많다. 어린 나이에 오로지 골프 하나만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한국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또 세계 최강 한국여자골프에 걸맞은 커뮤니티도 만들고 싶다. 한국은 물론 미국 팬과도 어울릴 수 있는 자선 행사를 열었으면 한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리는 대회가 있으면 대회 기간 중 하루를 ‘코리안 데이’로 선정, 교민들과 호흡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직 하고픈 일의 10%도 못했다. 아니 아예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제 코가 석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최고였지만 아직 미국에서 우승을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부산에 살고 있는 정일미 프로의 부친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까닭에 골프 외의 이런저런 일에 외동딸의 이름이 거론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부친이 <일요신문> 애독자인 까닭에 ‘벙커샷’이 정일미에 관해 더 많은 얘기를 쓸 수 있었지만 그동안 자제하기도 했다.
어쨌든 미LPGA의 한국골프 위상 증진을 위해서라도 정일미의 우승이 하루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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