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레딩 FC 입단 후 지난 8월 30일 귀국해 기자회견을 마친 설기현과 어머니 김영자 씨를 취재 카메라들이 따라다니고 있다. 프리미어리거가 되니 언론의 대접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며 김영자 씨는 감격스러워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프리미어리그 레딩 FC 설기현의 어머니 김영자 씨(49). ‘부모가 쓰는 별들의 탄생 신화’에 어머니가 등장하기는 처음이다. 처음 연재를 부탁했을 때 ‘내가 뭐가 잘났다고 인터뷰를 하냐’며 한사코 거절하다 강릉으로 찾아간 기자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탄광촌에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남편 대신 4형제를 혼자 키워낸 그의 인생에 정작 그 자신은 없었다. 오로지 아들 넷을 잘 키우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고 지금도 거기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설기현이 축구로 성공하고 싶은 가장 큰 목표와 이유였던 어머니 김영자 씨의 굴곡 많은 뒷바라지 사연을 들어본다.
지난 8월 30일의 일이다. 기현이와 함께 영국에서 귀국했을 때 인천공항에 모인 기자들을 보면서 새삼 기현이의 위치에 대해 다시 느끼게 됐다. 이전에는 기현이 때문에 그렇게 많은 기자들이 모이지 않았다. 인터뷰도 기자들 몇 명한테 둘러싸여 했던 게 전부다. 이번에는 기자회견 장소도 따로 있었고 서서 하는 게 아닌 앉아서 제대로 된 인터뷰가 진행됐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기현이가 레딩 FC로 옮기며 난 ‘지원군’으로 영국 땅을 밟았다.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며느리 혼자서 이사를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정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다. 솔직히 프리미어리거가 되는 아들 모습을 직접 보고 싶기도 했다. 얼마나 꿈에도 그리던 무대였던가. 벨기에에서 갖은 고생 다하면서도 포기를 몰랐던 이유가 바로 프리미어리그를 밟고 싶은 간절한 소망 때문 아닌가.
그러나 막상 영국에 도착해 보니 내가 할 일이 없었다. 이사하기 전날 갑자기 이사가는 집에 사정이 생겨 일주일 정도 이사를 늦춰야 한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이미 이삿짐을 다 싸 놓은 상태에서 다시 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현이는 호텔로 들어가라고 했지만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 손녀딸 때문에 호텔 생활은 불편하기만 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며느리가 아이디어를 냈다. 일주일 동안만 이영표 선수네 집에 신세를 지자는 것이었다. 영표네 집과 레딩 FC와는 차로 1시간 거리라 기현이가 이동하기에도 큰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기현이가 남에게 폐 끼치는 걸 무척 싫어했고 나 또한 객식구이다보니 영표네 집에서 생활하는 게 부담스럽기만 했다.
몇 차례 아들 내외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거듭하다가 급기야 영표에게 SOS를 쳤고 영표와 그 가족들은 오갈 데 없어진 우리 식구들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가량 영표네와 불편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동거가 시작됐고 이사하는 날까지 영표 안식구의 정성스런 배려와 마음 씀씀이로 우리 가족들은 미안한 마음을 감춘 채 더부살이를 할 수 있었다.
레딩 FC에서 마련해준 기현이의 새로운 집은 이전의 집들보다 훨씬 크고 깨끗하고 쾌적해 보였다. 집도 아파트가 아닌 정원이 달린 주택이었고 무엇보다 손자 인웅이가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이사하느라 몸은 고달파도 마음이 행복했다.
이삿짐을 정리해 놓고 기현이 내외와 영국에서 처음으로 와인을 한 잔씩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기현이는 줄곧 어린시절 고생했던 얘기와 축구하면서 선배들 구타에 힘들었던 스토리를 쏟아냈다.
여기서 처음 밝히지만 기현이는 레딩 FC로 이적하기 전 한국의 한 프로팀으로부터 강력한 러브콜을 받았다. 레딩 FC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액의 몸값을 제시하는 바람에 기현이가 잠시 흔들린 것도 사실이다. 월드컵 이후 그 제의는 더욱 강력했고 기현이는 강릉 집에서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면서 오래 갈등했다. 솔직히 말해서 난 기현이가 한국으로 돌아왔음 했다. 돈도 돈이지만 프로 생활 시작한 이후 줄곧 외국에서 지냈기 때문에 좀 더 가까이서 아들을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진출과 한국행 복귀. 정답이 뻔히 나온 문제였지만 기현이가 흔들렸던 가장 큰 이유는 ‘돈’과 ‘미래’였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