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변을 토하고 있는 최강희 전북 감독. | ||
연·고대 출신이 즐비한 축구계에서 고졸 출신으로 프로팀 감독에까지 오른 최 감독은 특유의 ‘무대뽀’ 정신으로 현실과 타협을 모른 채 무조건 돌진하는 ‘돌쇠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평소 ‘방송용 멘트’를 모르고 무조건 솔직하게만 얘기하는 통에 오히려 기자들이 ‘알아서’ 가려 써야 할 정도로 수위가 ‘쎈’ 발언들을 해대는 최 감독을 지난달 28일 목포에서 만나 가볍게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터뷰를 했다.
오는 12월 11일 일본에서 열리는 FIFA 클럽 월드컵. 전북 현대가 상대할 팀은 멕시코의 클럽 아메리카 팀이다. 만약 전북 현대가 1차전에서 클럽 아메리카를 꺾으면 4강에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맞붙는다. 창단 12년 만에 세계적인 클럽으로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아 전북 현대는 AFC 우승 직후 목포에서 전지훈련을 가졌다.
최강희 감독이 전북 지휘봉을 잡은 이후 가장 달라진 부분은 팀 분위기다. ‘존재하지만 군림하지 않는다’란 최강희 감독의 색깔이 팀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선수단 전체가 자유롭고 편안하다. 그렇다고 해서 최 감독을 ‘물’로 보면 안 된다. 훈련할 때 ‘대충’과 ‘얼렁뚱땅’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생활에서 ‘올인’을 강조한다.
덜컹대고 삐걱대는 등 소리만 요란했던 팀이 잠잠해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감독 부임 후 최 감독의 일상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다른 팀에선 기본인 요소들이 모두 충족되지 않아 선수들 숙소 문제와 훈련구장의 잔디 교체 등 ‘해달라’는 요구 조건들이 늘어만 갔다.
“위에선 이런 내 모습이 결코 ‘이뻐’ 보였을 리 만무하다. 갖고 있는 것 잘 버무려서 성적내주기를 바랐던 구단 입장에선 부임 첫날부터 얼굴에 핏대 세우며 이것저것 요구 사항들을 늘어놓는 감독을 보곤 ‘아차’ 싶었을 것이다. 나 또한 선수들 숙소가서 기절할 뻔했기 때문에 기본도 안 갖춰져 있는 팀에서 선수들을 상대로 닦달만 할 순 없는 게 아닌가. 시설도 시설이지만 무엇보다 선수가 없었다. 11명 주전 멤버를 짤 만한 선수조차 없는데 어떻게 게임을 나가겠나. 그동안 속 터져 죽지 않은 게 다행이다.”
울산 현대에서 선수 시절을 보내고 수원 삼성에서 코치 생활을 한 뒤 대표팀 코치에 오르는 등 주로 ‘메이저’에서만 생활했던 최 감독으로선 전북 현대의 믿기지 않는 현실이 처음엔 가슴이 아팠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아가 치밀었다고 한다.
▲ 최인영 코치(왼쪽), 차종복 스카우트와의 건배 모습. | ||
그 사이 최 감독은 구단을 상대로 한 ‘싸움닭’에서 차례대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시간차 공격’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다 지난해 FA컵에서 전북 현대가 우승을 차지하자 최 감독의 ‘아우성’이 타당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구단에서도 최 감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점차적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4강으로 올라서니까 이전 수원 시절 때 인연을 맺었던 선수들이 전화를 해오더라. 모두 하는 말이 ‘4강 올라가면 우승한 거나 다름없다’는 거였다. 립 서비스하지 말라고 했더니 4강까지 올라갔다면 분명 내가 선수들한테 ‘펌프질’을 할 거라는 이유를 댔는데 그땐 ‘펌프질’이 통했지만 지금 선수들한테는 ‘펌프질’이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펌프질’의 내용이나 강도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수원 선수들 사이에서 ‘칼 있으마’로 통했던 최 감독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쉽게 연상되는 부분이 있다. 당시 수원 삼성의 문제아 3인방으로 꼽혔던 고종수 데니스 산드로를 상대로 최고 5백만원의 벌금을 물린 적도 있을 만큼 선수들 사이에선 ‘저승 사자’로 통했었다.
갑자기 화제가 최 감독과 인연 또는 악연을 맺었던 고종수로 옮겨 갔다. 기자가 며칠 전 고종수를 청담동에서 봤다고 운을 떼자 최 감독은 고종수를 전북 현대로 데려 오려했던 뒷얘기를 털어놨다.
“(고)종수의 볼 거 안 볼 거 다 봤던 나로선 종수가 그라운드를 떠나 있는 게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에이전트와 대략적인 연봉에 합의를 하고 종수를 직접 만나려고 약속까지 했는데 구단 측의 반대로 틀어졌다. 지금도 종수 생각을 하면 여전히 아쉽고 안타깝다.”
수원 삼성에서 트레이너로 시작해 코치로 7년이란 시간을 보낸 최 감독은 2001년 1월 13일 구단으로부터 갑작스런 해임 통보를 받게 된다. 김호 당시 수원 감독과 오랜 인연을 맺었던 최 감독은 너무나 뜻밖의 결정에 한동안 깊은 방황을 했다고 고백한다.
“보통 코치를 자르려면 가을이나 시즌 끝나기 전에 미리 통보한다. 그런데 1월에 그만두라고 한 것도 억울했지만 도통 해임 사유가 불분명했다. 인간 관계에 심한 회의를 느꼈고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곧장 스페인으로 떠났는데 거기서도 한동안 축구장을 가지 못할 정도였다. 김 감독이 뭔가를 오해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지만 이 자리에서 말하기가 그렇다. 지금은 김 감독이 화해의 손을 내밀지만 난 영원히 그 앙금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은 수원 삼성 시절 ‘칼 있으마’‘저승사자’로 불렸지만 최근 ‘강희대제’ ‘강희딩크’란 새 별명을 얻었다. 인터뷰 중 그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무조건 ‘반대’는 아니었다. 타당한 주장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물정을 전혀 모르는 감독이 원칙과 논리만을 강조하면서 선수들을 다룬다면 조금씩 틈이 생기는 법이다. 쿠엘류 감독 밑에서 정말 ‘뚜껑’ 많이 열렸었다. 네덜란드에서 11시간 비행기 타고 온 선수를 바로 울산으로 불러 들여 훈련시킨 후 미니 게임까지 뛰게 한다든가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짜지 못하는 비상식적인 행동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날 ‘감독 흔들기’의 주동자로 몰아세우는데 나까지 입 닫고 있었다면 한국대표팀이 표류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최 감독은 아직 한국대표팀은 국내 감독이 맡기엔 무리수가 많다고 주장한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 축구 문화만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 국내 감독을 세울 수 없게 한다는 지적이다.
“대표팀에서 감독이 바보되는 건 시간문제다. 아무리 강심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버틸 수가 없다. 한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는 있다. 국내 감독이 맡은 뒤 어느 목표 지점까지 계속 승리만 하면 된다. 그러면 뒷말이 없을 것이다.”
최 감독에게 고졸 출신이라는 프로필에 콤플렉스가 있는지를 물었다. ‘네버(never)’였다. 마음만 먹으면 분명히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는데 나이와 관련된 무슨 ‘사건’이 터지면서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타협과 순응을 잘 몰랐던 젊은 시절, 평탄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을 것 같아 ‘사고 친 일’을 주문했더니 주옥같은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주로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였는데 대표팀 시절 러시아 원정 경기를 떠나는 날 아침 7시 30분까지 술 마시다 타워호텔로 들어가 아침 식사하고 비행기를 탄 스토리에선 모두가 뒤집어졌다.
목포의 자연산 회를 안주삼아 마신 소주가 너무 ‘달았다’. 어쩌면 최 감독의 입담이 더 달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인터뷰 자리에 합석한 최인영 코치와 차종복 스카우트가 보여주는 최 감독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더더욱 분위기를 업 시켰던 것 같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훨씬 많이 남은 최 감독이 FIFA 클럽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보다는 최선을 다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