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나인브릿지 대회 당시의 박세리와 캐디. | ||
프로 투어에서 전문 캐디는 선수들의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자신이 보좌하는 선수들이 연습라운드를 하기 전 그 시합 코스를 면밀히 체크하며 선수에게 조언해준다. 어떤 캐디들은 시합 코스의 특징을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코스 안내북에 꼼꼼히 메모를 해두었다가 그 시합 코스에 맞는 연습을 조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합장에 러프가 깊은 코스에서는 러프 탈출에 집중적인 연습을 조언하고 그린이 까다로운 코스의 경우 퍼팅 연습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을 제안한다. 캐디의 역할에 따라 선수의 성적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2년 전 테네시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한 선수가 둘째 날 17번 홀까지 5오버파를 기록하고 있었다. 컷오프가 6오버파였는데 남은 18번 홀은 파5홀로 무난히 파를 기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선수가 티샷한 볼은 왼쪽 벙커에 들어갔지만 3온만 시켜도 파를 기록해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던 까닭에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수가 벙커샷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 선수의 캐디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선수가 볼을 치기 전에 공 주위의 모래를 정리한 것이다. 정말 어이없는 실수였다. 선수는 2벌타를 받았고 결국 7오버파를 기록해 한 타차로 컷오프됐다. 아직도 미LPGA 캐디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남아 있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그 캐디는 즉시 해고당했고, 현재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캐디의 실력은 성실성과 관련이 깊다. 어떤 캐디들은 종종 선수와 약속한 연습 시간을 어기고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나중에 왜 그랬는지 물어보면 전날 마신 많은 양의 술 때문이라고 무책임하게 답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여자 선수들이 성실성을 바탕으로 미국 무대를 휩쓸듯이, 최근에는 캐디업계에서도 외국 캐디가 압도적인 성실성을 바탕으로 미국 출신의 캐디보다 나은 평가를 받고 있다. 주로 영어권 국가인 영국, 호주 출신 캐디들이 미LPGA 투어로 몰려와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 성실한 태도와 뛰어난 실력으로 선수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 토박이 캐디들이 이를 은근히 시기해 왔는데 최근 생계를 위협받을 수준이 되자 외국 캐디들의 취업비자문제에 관하여 미LPGA 사무국에 항의하게 됐다. 이전에는 다 알면서도 동업자 정신에 따라 문제삼지 않았던 부분이다. 결국 사무국은 지난해 모든 외국 캐디들에게 취업비자를 꼭 받아야 한다는 공문을 내보내게 됐다. 미국 취업비자가 없거나 만료된 외국 캐디들은 투어 휴식기인 겨울 두 달(12~1월) 동안 취업비자를 받느라 바쁘다. 자칫 작은 문제로 인해 비자 획득에 실패할 경우 투어에서 일하지 못하는 사태까지도 우려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의 경우, 투어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이 많은 이점을 톡톡히 본다. 캐디에 관한 모든 정보를 교환하고 조언하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 사이에선 불성실한 캐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참고로 미LPGA에서 활약하는 전문 캐디들은 평균 600~1000달러의 주급을 받는다. 여기에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5~10%의 인센티브를 받으니 톱 캐디의 경우 1년에 10만 달러가 넘는 수입을 쉽게 올린다. 연봉 10만 달러는 미국에서도 잘나가는 회사원의 연봉을 뛰어넘는 고소득이다.
다이아몬드바(CA)에서 송영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