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약의 의미
이원준은 LG전자와 계약기간 10년에 연간 20만 달러라는 조건에 후원 계약을 맺었다. 액수를 떠나 계약 기간 10년은 그 자체가 파격적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나이키와 계약할 때 5년 단위로 한다. 10년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며 한국에서도 삼성(삼성물산)이 95년 박세리와 맺은 10년 계약(계약금 8억 원 연봉 1억 원) 후 처음이다. 한국의 글로벌기업이 불과 두 달 전 프로에 뛰어든 골퍼와 ‘미래의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파격적인 장기 계약을 했다는 것 자체가 뉴스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놀랍다. LG전자 외에도 국내 굴지의 기업이 ‘미완의 대기’인 이원준 잡기에 나섰고, 이번에 그 승자가 정해진 것이다. 막후에서 계약을 성사시킨 이성환 세마스포츠 이사는 “이원준의 가능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스폰서가 싼 가격에 좋은 선수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기업뿐 아니라 이원준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으려는 물밑 경쟁이 정말 치열했다”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 계약금 성격의 뭉칫돈, 혹은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와 재계약시 파격적인 후원금 인상 등 공식 발표보다 후원 내용이 더 클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원준은 아직 프로 첫 승도 올리지 못했고, 출전권도 아시아투어만 갖고 있다(2006년 12월 Q스쿨 통과). 2006년 삼성베네스트오픈에서 당시 같은 아마추어였던 김경태에게 져 준우승하는 등 객관적인 성적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가능성이다. 괴물 이원준의 엄청난 잠재력을 말할 때 첫 손에 꼽는 것이 바로 장타력이다. ‘골프 황제’ 우즈, ‘천재 소녀’ 미셸 위 등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장타는 세계 정상의 골퍼에 있어 필요 조건이다. 미PGA 우승 기록을 갖고 있는 호주 출신의 피터 로나드는 2004년 호주 NSW오픈에서 이원준과 동반 라운딩 후 이렇게 말했다.
“그가 첫 번째 티샷을 할 때 사실 나는 그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곧 엄청난 타격음을 들었다. 그가 친 공은 왼쪽 코너의 50피트가 넘는 나무를 넘어 200m 전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고 놀라운 선수다. 그가 공을 칠 때 공에서 연기가 날 정도다.”
‘그가 공을 칠 때 연기가 날 정도’라는 평가는 타이거 우즈도 듣지 못했다. 실제로 이원준은 정말 공을 멀리 친다. 평균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330야드. 호주 공식 대회에서 425야드를 기록한 바 있다. 2005년 한 미국 대회에서는 무려 470야드(약 430m)를 날리기도 했다. 참고로 우즈의 2006년 미PGA 드라이버샷 평균 비거리는 306야드였다.
엄청나게 멀리 쳐도 성공하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 하지만 이원준은 침착하면서도 대담한 성격, 그리고 뛰어난 두뇌 플레이와 성실성까지 갖췄다. 장타력과 함께 정확성을 갖춘 것이다. ‘덩치는 어니 엘스지만 성격은 이창호(프로바둑기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 무늬만 한국인?
이원준은 한국어와 영어 모두 능통하다. 호주 시드니에서 중학교 때까지 ‘다니엘 리’라는 영어 이름을 썼다. 그런데 어느날 스스로 영문 이름을 ‘이원준’으로 바꿨다. 한국 사람임을 알리고 싶었고, 특히 가운데 글자인 원(Won)이 ‘이긴다’는 뜻이어서 더 좋아했다. 비록 국적은 호주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고 외모는 물론 문화까지도 완전 한국형이다.
실제로 이원준은 지금까지 자기만의 노트에 한 번이라도 후원금을 준 사람들의 명단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나를 도와준 사람들은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도움을 준 것인데 나중에 내가 골프 선수로 성공하면 다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게 그 이유다. 겸손하면서도 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골프를 떠나 이원준을 아끼는 사람이 많다.
■ 향후 계획
이원준의 최종 목표는 당연히 미국 PGA다. 2007년은 미PGA 진입을 위한 해다. 든든한 후원자를 얻음과 동시에 이원준은 지난 8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타이거 우즈의 스윙코치였던 부치 하먼의 지도를 받고 있다. 40일간 스윙과 쇼트게임 등을 집중 보강한 뒤 다음달 22일부터 나흘간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네이션와이드투어(미PGA 2부투어) HSBC뉴질랜드PGA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출전 가능한 네이션와이드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내 풀시드 획득을 노리고 만약 이에 실패할 경우 연말 미PGA Q스쿨에 응시할 계획이다. 또 호주, 일본 및 아시아투어는 물론 한국 대회에도 꾸준히 출전할 예정으로 ‘괴력의 장타’는 2007년 국내에서 더 큰 화제를 모을 전망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 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