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준 종이를 보던 부산 관계자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곳에는 적힌 선수명단 때문이었다. “안정환, 이동국, 박주영, 김은중….”
한참 동안 멍한 표정을 짓던 부산 관계자가 감독에게 물었다. “진심으로 이 선수들을 다 데려오길 원합니까?” 에글리 감독이 태연스럽게 답했다.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수가 필요합니다. 이 중 한 명이라도 영입해 주시오.”
부산 관계자가 감독을 보고 힘주어 얘기했다. “이 가운데 한 명만 영입하면 올해 선수 보강은 더 없어도 되죠?” 구단 관계자의 ‘완곡한 거부의사’를 들은 에글리 감독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휴가를 떠났다.
K리그 이적시장을 들었다 놓았다 할 뻔했던 에글리 감독. 그는 한국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됐던 지난해 여름 프로축구연맹 김원동 총장을 머쓱하게 한 적이 있다. 당시 김 총장은 K리그 감독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최근 심판판정 때문에 말이 많았다. 심판도 사람이니 실수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감독님들께서 심판들을 믿어 달라. 종종 너무 의혹의 시선을 보내며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총장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에글리 감독은 별안간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뭐하는 거요? 여태까지 경기 중에 속임수(cheating)가 있었단 말이오?” 김총장은 에글리 감독의 생뚱맞은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나는 감독분들이 심판 판정에 불필요한 의혹을 거둬달라는 말을 원론적인 차원에서 한 겁니다.”
에글리 감독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한마디 했다. “당연한 걸 갖고 왜들 이렇게 모여 그 얘기를 한단 말이오. 이럴 거면 다음에는 이런 자리에 날 부르지 마시오.”
전광열 스포츠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