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아테네올림픽 육상경기 장면. | ||
그런데 최근 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 여부가 ‘돈’에, 그것도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월 22일부터 4일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실사단이 대구를 방문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세계육상선수권 유치 전쟁.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취재했다.
IAAF는 2011년 대회를 비유럽권 국가에서 연다는 내부 원칙을 갖고 있다. 2007년 오사카(일본), 2009년 베를린(독일) 등에 이어 대륙 순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는 현재 호주의 브리즈번과 치열한 2파전을 펼치고 있다. 호주는 육상 강국이며 영어권이라는 면에서 강점을 갖고 있어 시설과 지자체의 의지를 앞세운 대구와 만만치 않은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에 최근 한 육상인은 <일요신문>에 “IAAF가 한국에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해왔다. 형식은 IAAF 후원인데 그 액수가 연간 수백억 원에 달하고 기간도 2011년까지 5년이 넘는다. 일본이 이 선례를 따른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경우 실제로 이런 액수를 부담할 곳은 삼성밖에 없다. 결국 삼성이 세계육상선수권 대구 유치의 키를 쥐고 있다”고 전했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위원회와 삼성 등에 확인한 결과 이 제보는 다소 정보의 정확성에 문제가 있지만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유치위원회의 최영호 홍보팀장은 “IAAF가 대구유치위원회에 스폰서 요청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91년 도쿄, 2007년 오사카 유치) 등 어느 정도 관례인 점도 있고 해서 (유치위원회는) 요로를 통해 삼성 측에 IAAF 스폰서 참여를 부탁했다”고 밝혔다. 유치위원회는 삼성이 이에 대해 아직 확답을 주지 않고 있어 답답해하고 있다. 최 팀장은 “현재 삼성의 지원 사격이 없어도 브리즈번과 5 대 5 정도의 대등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삼성의 스폰서 참여만 결정되면 케냐에서도 투표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대구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치위원회에 따르면 IAAF가 요구하는 금액은 2009년과 2011년 두 대회를 후원하는 조건으로 하는 150억~200억 원으로, 소문이 난 ‘연간 300억 원설’과는 차이가 컸다. 그러나 국제 육상계 사정에 밝은 한 육상인은 “공식적인 액수와 비공식 액수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토털 200억 원은 말이 안 된다. 연간 100억 원 수준은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유종하 유치위원장(왼쪽)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 ||
삼성의 반응은 신중하다. 이건희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고, 삼성전자가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사를 맡고 있다. 더욱이 대구는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뿌리다. 여러 면에서 어떤 식으로든 지원을 해야 한다는 당위론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먼저 평창동계올림픽이 더 중요하다. 삼성스포츠단의 한 관계자는 “김운용 회장도 없고, 이건희 회장이 한국의 두 IOC 위원 중 한 사람인 상황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는 압력이 삼성에 쏟아지고 있다. 또 삼성은 현재 올림픽의 공식 파트너다. IAAF와는 특별한 관계가 없다. 삼성으로서는 동계올림픽이 1순위이기 때문에 아직 세계육상선수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 마디로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전자에 쏠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케팅 차원에서도 세계육상선수권은 삼성에게 매력이 떨어진다. 국내에서는 육상이 비인기 종목으로 영향력이 크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 굳이 세계선수권을 유치하지 않아도 훨씬 적은 비용으로 육상과 인연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치위원회는 육상에 대해 애정이 많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통해 지원 사격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올림픽 성화 봉송을 가장 많이 한 윤 부회장은 삼성전자 육상단 창단에 깊이 관여하는 등 육상과 인연이 깊다. ‘삼성 설득’에는 유종하 유치위원장이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주관하고 있다.
현재 삼성은 유치위원회의 요구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OK 사인은 주지 않고 있다. 유치위원회에 따르면 ‘유치가 결정되면 스폰서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비공식 답변은 나왔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유치위원회를 더욱 애타게 만들고 있다. 유치 결정을 확정짓기 위해 삼성의 결단이 필요한 것인데 ‘유치되면 돕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유치위원회가 삼성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과도 적극적으로 접촉해 어느 정도 액수를 마련한 후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너무 책임 떠넘기기 성격이 짙다. 그래서 삼성이 주춤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스포츠마케팅 전문 회사인 덴쯔를 중심으로 다수의 기업이 세계육상선수권 후원에 참여하고 있다.
IAAF의 개최 도시 결정은 아주 폐쇄적이다. 회원국 전체가 아니라 집행위원 28명의 투표로 결정된다. 그만큼 해당 국가의 정치적 요인보다는 실제적인 경제적 요인이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의 ‘실탄’ 지원이 대구 유치에 결정적 요인이라는 점이다. 2011년 대회는 3월 27일 케냐의 몸바사에서 열리는 집행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한국은 박정기 전 KAAF회장(현 한미친선군민협의회 회장)이 유일한 집행위원으로 참석한다.
유병철 객원기자 einer66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