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2006렉스스컵 대회에서 티샷을 날리는 ‘임신부’ 한희원. 한희원은 2개월 전인 10월 임신을 확인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
지난해 10월 임신을 확인한 한희원은 동계훈련을 많이 하지 못했다. ‘은둔형’으로 불릴 만큼 본디 조용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태교를 위해 음악감상과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레이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특유의 컴퓨터 아이언샷은 여전했고 샷의 비거리나 체력 등에서 큰 문제가 없었다. 골프전문가들은 “동계훈련양은 부족하지만 편안한 상태에서 꼭 필요한 연습만 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현재 한희원은 슬쩍 봐도 배가 다소 불룩한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기자는 얼마 전 한희원에게 ‘임신 투혼’과 관련해 서면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한희원은 최근 이와 관련해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고 경기나 심리적 안정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정중히 거절의 뜻을 밝혔다. 대신 오는 3월 말 나비스코챔피언십까지 투어일정을 소화한다는 사실과 이때 공식인터뷰를 통해 출산 및 투어복귀 계획을 밝히겠다고 전해왔다.
한국선수로는 한희원이 첫 테이프를 끊고, 또 박희정 등이 다음을 잇게 될 미LPGA의 마미선수들. 과연 그들의 임신과 출산 및 육아는 투어와 기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07년 미LPGA 사무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현재 엄마선수는 총 32명이다. 2003년 26명에 비해 다소 늘어난 수치로 전체적으로 ‘마미플레이’가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 32명의 자녀수는 총 42명(예비엄마인 한희원과 카렌 스터플스 포함)으로 평균 1.3명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실상 투어 경쟁력이 없는 조건부 출전자나 잠정적 은퇴 상태인 선수가 포함돼 있다. 138명의 풀시드 선수를 대상으로 하면 엄마선수는 19명이다. 비율은 13.7%로 10명 중 한 명이 조금 넘는 셈이다.
그럼 임신 중 성적은 어떨까. 모두에서 밝힌 것처럼 눈부신 선전은 가끔 있지만 아직 프로대회 우승은 알려진 바 없다. 국내에서도 2005년 파브인비테이셔널에서 로라 디아즈(미국)가 임신 5개월의 몸으로 훌륭한 샷을 선보였고, 2004년 KLPGA 캡스인비테이셔널에서는 박현순이 임신 6개월의 몸으로 1라운드에서 공동선두에 오르기도 했다.
주말골퍼들도 관심이 많은 임신 중 플레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경우 복부에 부담을 주는 탓에 좋지 않다는 의견이 많은 반면 일부 골프전문가들은 “자연스러운 체중증가로 안정감이 좋아지고 거리도 늘어난다”(전현지 프로)며 긍정론을 펼치기도 한다.
▲ 박희정 | ||
출산과 육아가 성적에 미치는 영향도 단정짓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출산은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단순히 출산이 성적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투어와 가정 모두 성공적으로 꾸려가고 있다는 칭찬을 듣고 있는 잉스터의 예를 살펴봐도 이는 분명하다. 잉스터는 83년부터 89년까지 9년 동안 13승을 거뒀다. 또 90년 첫 출산 이후 지금까지 18승을 올리고 있다.
카린 코크는 “사실 따지고 보면 출산 자체보다 육아가 더 힘들다. 아이가 떨어지려 하지 않을 때 골프연습을 위해 때때로 스스로 이기적이 돼야 하는 현실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한 바 있다.
투어와 가정을 모두 잘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둘을 분리해야 하고 또한 이것은 남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리적으로 육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골프연습을 짧지만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한국선수들은 이 경우 미국선수들에 비해 불리하다. 미국에 가정이나 친지들이 많지 않고 또 투어생활을 ‘외조’할 남편감을 고르는 일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도 아직 한국은 육아에 대해 아빠보다는 엄마의 부담이 크기도 하다.
한희원의 경우도 야구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남편 손혁이 3월부터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육아와 관련해 남편의 도움을 받기가 더욱 힘들어진 셈이다. 한국으로 들어와 애를 낳은 후 투어복귀를 준비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육아에 대한 걱정이 많다. 미국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그나마 낫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시즌 중 아이와 생이별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반년 정도 투어를 쉬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휴식기가 수년간으로 길어질 경우 경기력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98년 박세리를 시작으로 거침없이 세계 정상을 향해 달려온 한국여자골프가 만 10년째를 맞이하면서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새로운 문화체험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유병철 객원기자 einer6623@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