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국내 남자 체조의 간판 스타였던 이주형(34)·이장형(33) 형제. 정확한 명칭은 남자 체조대표팀의 이주형 감독과 이장형 수석 코치다. 체조를 시작한 이래 선수 생활부터 지도자까지 줄곧 ‘바늘과 실’처럼 붙어 다닌 두 사람은 인터뷰도 혼자보다는 둘이서 같이 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울 정도로 많은 시간을 함께해 왔다.
평행봉 부문에서 세계 정상급 실력을 과시하며 줄곧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주형 감독. 그런 형의 ‘그늘과 햇빛’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꼈던 이장형 코치. 대표팀 감독과 수석 코치로 ‘체조 형제’의 2라운드를 함께 공유하는 두 사람을 지난 3월 7일 태릉선수촌 부근의 음식점에서 만났다.
태릉이라는 지역적 음식 문화(?)에 걸맞게 돼지갈비를 시켰다. 인터뷰를 하면서 고기를 굽고 먹고 받아 적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절감했지만 더 당황스러웠던 건 취재원들이 도통 돼지갈비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먹기를 권유하다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 한 가지. 형은 동생한테 미안해서, 동생은 형이 먹지 못하고 인터뷰를 하는데 혼자 먹기가 죄송해서 고기에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다.
대단한 형제애에 진한 감동까지 느끼며 ‘간단히’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아무리 감독과 코치라 해도 합숙 중에 술을 마시는 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엔 ‘잠시’ 눈치를 보던 두 사람. 음주 여부가 아니라 누가 운전대를 잡을 지를 놓고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음주입문은 아우 먼저
형 이주형 감독은 대구에서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반듯한’ 운동 생활을 했다. 동생 이장형 코치는 중학교 때부터 포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어느 정도의 일탈이 가능했다. 술을 접하는 시기가 빨랐고 자연스러웠다. 더욱이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 치킨 집과 슈퍼를 운영하고 있어 술과 안주가 완벽히 공수돼 왔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때 체조팀 감독이 입만 대보라고 건네준 맥주 한잔의 맛을 잊지 못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신 소주 맛에 넉다운 됐을 정도로 알코올이 주는 묘미에 흠뻑 빠졌다는 이 코치. 한참 동생의 음주 입문기를 듣던 ‘바른생활 사나이’ 이 감독이 이렇게 딴지를 건다. “중학교 때 맥주 준 감독이 누구야?”
▶형 따라 체조 시작
어린 시절 체조를 하는 형의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는 이 코치. 결국 형을 따라 이듬해부터 체조를 시작했지만 야구, 축구를 하면서 한창 뛰어 놀 나이에 체육관에서 줄기차게 철봉과 평행봉만 잡고 지내는 건 너무나 재미없었다. 그래서 잠시 운동을 멀리했던 이 코치는 이 감독이 중3 때 대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걸 지켜보며 다시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이 감독은 당시 이 코치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장형이가 몸이 많이 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집안 형편 때문에 형을 대신해 운동을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내가 성적을 내니까 자극을 받고 다시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때가 동생의 체조 인생에 가장 큰 위기가 아니었나 싶다.”
▶때론 엄한 형
같은 종목에서 형제가 두각을 나타내다보니 보이지 않는 질투와 관심을 많이 받게 된다. 한 번은 대표팀에서 훈련 도중 이장형이 부상을 당했다. 코치와 선수들이 이장형에게 뛰어가 부상 정도를 확인할 때 이주형은 훈련에만 열중했다. 그런 이주형의 모습을 본 동료 선수가 “너 장형이 형 맞냐?”고 말했을 정도.
▲ 철봉·평행봉이 주종목인 형 이주형(왼쪽)과 안마가 주종목인 동생 이장형의 선수 시절. 잘나가는 ‘형제 선수’가 이번엔 ‘형제 지도자’로 뭉쳤다. | ||
이 감독의 얘기를 듣고 있던 이 코치가 소주잔을 부딪치며 이렇게 털어 놓는다.
“형에게 서운한 적도 많았다. 굳이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너무 차갑게 대할 때 형이 형처럼 보이지 않았다.”
▶형제이자 라이벌
연년생으로 대표팀 생활을 하다 보니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이 자주 비교 대상이 되었던 두 사람이다. 주로 이 감독이 동생보다 앞서 나갔다. 형제가 동반 출전해서 화제를 모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도 이 코치는 안마 부문에서 4위에 머물렀지만 이 감독은 평행봉과 철봉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이장형의 이름 앞에는 항상 ‘이주형의 동생 이장형’이 수식어처럼 따라 다녔다. 그게 너무 싫었다. 난 이장형인데 왜 매번 형의 이름이 앞서 나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다.”
이주형 감독은 늘 이 점이 미안했다고 한다. 먼저 운동을 시작했고 큰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는 부분 때문에 동생의 실력이 가려지는 것 같아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었다.
“90년 북경아시안게임 이후 잠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 출전해선 금메달을 따내는 게 아닌가. 그때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그동안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내 차지였는데 동생이 1등을 하니까 이전의 영광은 온데 간데없고 그 스포트라이트가 동생한테 쏠리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이주형의 동생 이장형’이 아닌 ‘이장형의 형 이주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햇빛과 그늘
두 사람은 중학교 고등학교만 다르고 초등학교와 대학교를 함께 다녔다. 고3 때 성적이 좋았던 이 코치는 형이 다니는 한양대만은 비켜가고 싶었다고 한다. 대학에서 형의 그늘에 가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한체대를 가려고 했다. 아는 선배가 권유도 했고 형이 가 있는 한양대를 벗어나려면 한체대행이 제일 나았다. 그런데 운명은 역시 형의 그늘 속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한양대 입학이 결정됐다. 신입생환영회에서 형을 대하니까 한숨만 나오더라(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