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홍만을 KO시킨 마이티 모를 KO시켜 스타덤에 오른 카오클라이.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무에타이 선수들이 득시글거리는 태국보다 일본, 한국의 K-1에서 자신의 주가를 한껏 높이 올리고 있는 카오클라이를 만나기 위해 지난 14일 대치동에 위치한 ‘칸 오피셜 격투 짐’을 찾았다.
지난 13일 오전에 귀국한 카오클라이는 곧장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이명박의 출판 기념회로 향했다. 사실 두 사람은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K-1 KHAN 대회위원장을 맡은 인연으로 카오클라이가 정치인의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
그래서 물었다. 이명박 전 서울 시장이 한국의 차기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카오클라이는 그저 “(이명박이나 출판 기념회 자체에 대해) 잘 모르는 일이지만 유명한 분이 날 불러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만 짧게 대답했다. 현장을 찾은 사람들에 의하면 이명박 전 서울 시장이 VIP인사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현장에 있었던 유명 스포츠 스타들을 제치고 유독 카오클라이만 호명을 하고 인사를 시켰다고 한다. ‘태국에서 온 카오클라이!’하면서 말이다.
사연이야 어떻든 카오클라이는 한국에서의 경험들이 생경하면서도 재미있기만 하다. 술집에 가도, 식사를 하러 음식점을 찾아도 여기저기서 사인지를 내밀며 사인 요청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원래 카오클라이는 태국에서도 잘 알려진 선수가 아니었다. K-1 측에서 아시아 그랑프리를 기획하던 중 워낙 아시아권 선수가 없자 고민 끝에 태국에서 무에타이 선수 한 명을 불러들인 게 카오클라이였다. 그런데 전혀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작은 체구의 선수가 2004서울그랑프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또 그해 월드 그랑프리전에서는 최홍만을 KO패시키며 유명해진 미국의 마이티 모를 8강전에서 만나 1라운드에 플라잉 하이킥으로 KO시키는 이변을 연출하며 신예 스타로 등극했다.
카오클라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2005년 최홍만의 K-1 데뷔전으로 알려진 서울그랑프리대회에서 최홍만과 결승에서 맞붙었던 무에타이 선수라고 하면 쉽게 기억이 날 것이다. 카오클라이는 40㎝ 이상의 신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판정패당하고 말았다. 카오클라이에게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최홍만을 링 위에서 처음 보는 순간 갑자기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보통 경기를 하기 전에 어떻게 싸우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는데 최홍만은 보는 순간 질려 버려서 모든 걸 잊어버리게 했다. 1라운드 공이 울리는데 싸우러 나가기가 싫더라. ‘난 죽었다’ 하는 심정으로 상대했다.”
엄청난 신장 차이가 주는 압박이 경기력에 지장을 줬고 결국 카오클라이는 제대로 된 공격조차 펴 보이지 못한 채 3라운드를 끝내게 된다. 카오클라이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K-1 선수들 중 가장 힘들게 싸운 선수로 역시 최홍만을 꼽았다. 패한 아픔 때문에 재도전을 도모할 수도 있겠지만 선수 생활동안 다시는 링 위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선수가 최홍만이라고 잘라 말했다.
▲ 지난 2005년 최홍만과의 경기 모습. | ||
“헤비급과 맥스급의 차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섭다’와 ‘무섭지 않다’의 차이다. 80㎏ 이상되는 선수들은 워낙 체격이 좋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버겁다. 그러나 맥스급 선수들과의 경기는 고향을 찾은 것처럼 편한 마음으로 임한다.”
스피드와 파워를 두루 겸비한 카오클라이도 맞는 게 두려울 때가 있었을까.
“링 위에서 맞는 건 두렵지 않다. 그러나 링 밖에서 맞는 건 무섭다. 링 밖에서 맞붙을 때는 발과 손만이 아닌 총이나 방망이도 사용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카오클라이는 지금까지 살면서 딱 한 차례 4 대 1로 싸움을 벌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시비를 거는 사람들을 상대로 맞붙었는데 무에타이 전법으로 4명의 청년들을 그대로 뻗게 만들었다는 일화를 곁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