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도중 전자랜드 코치직을 그만둔 제이 험프리스. 왕년의 NBA 스타였던 그는 지난 연말 마약 밀반입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 연합뉴스 | ||
‘국내 프로농구 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었던 인천 전자랜드 제이 험프리스 코치가 개인 사정으로 시즌 도중 하차했다. 험프리스 코치는 지난 1월 초 빙부상을 당해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전자랜드는 험프리스 코치가 사실상 국내로 돌아올 뜻이 없는 것으로 판단, 코치 계약을 해지할 예정이다.’
지난 3월 1일 한 스포츠 신문이 보도한 험프리스 관련 소식이다. 험프리스는 1월 3일 미국으로 떠났는데도 불구하고 두 달이 지나서야 뒤늦게 기사화된 것이다. 그나마도 이 소식을 자세히 전한 것은 이 신문뿐 대부분 언론은 ‘험프리스 실종’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언론도 무관심했지만 전자랜드 측이 험프리스 사건을 쉬쉬해 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험프리스가 갑작스레 미국으로 떠난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상식적으로도 월 2만 달러가 넘는 고수익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장인의 사업을 잇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험프리스는 2005년 6월 계약기간 2년에, 연봉 17만 달러, 그리고 자동차 주택 자녀 교육비 등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전자랜드와 감독 계약을 맺었다. 2005~2006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도중하차했지만 같은 시즌 기술 고문에 이어, 올 시즌에는 코치로 최희암 감독을 보좌했다. 프로농구계에서 구단이 일방적으로 보직 해임을 했을 때는 연봉을 보전받지만 스스로 그만뒀을 경우에는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험프리스는 돈을 포기할 만큼 한국을 떠나는 게 절박했던 것이다.
취재 결과 엄청난 사연이 숨어 있었다. 험프리스는 2006~2007시즌 초반인 2006년 11월 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소환을 받았다. 미국에서 항공우편으로 험프리스에게 보내진 소포에서 다량의 마약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험프리스는 관련성을 부인했고 불구속 입건 상태에서 수사가 계속됐다. 소변검사를 실시했지만 험프리스가 마약을 복용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마약은 소지하거나 거래만 해도 큰 범죄가 된다. 검찰은 험프리스가 큰 수익을 남길 수 있는 마약 밀매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갖고 수사를 계속했다. 전자랜드 농구단은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조치했고, 몇몇 프런트를 시켜 험프리스가 검찰에서 조사받는 것을 도왔다. 또 험프리스 본인도 한국의 법조계 지인에게 구제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한 달여가 흘렀을 때 험프리스의 장인이 사망했고, 검찰이 출국금지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험프리스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자랜드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팀 성적도 안 좋은데 험프리스 마약 사건이 터지면 정말 곤란하다”면서 “당연히 험프리스는 한국에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마약이 발견된 정황을 해명하지 못했고, 수사가 계속될수록 한국에 있는 관련 외국인들이 줄줄이 검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도중에 수사 담당자가 바뀌기도 한 검찰은 현재 기소중지와 인터폴 수사의뢰 등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소중지 처분을 내리면 험프리스가 영원히 한국에 오지 않는 한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반면 인터폴이나 직접 미국에 수사 협조를 의뢰하면 사건의 파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험프리스는 NBA 명가드로 이름을 날리던 80년대 중반 마리화나 복용 혐의로 기소되고 재활치료를 받은 바 있다.
험프리스를 잘 아는 한 국내 농구인은 “미국에서 선수시절 마약 때문에 호된 경험을 치른 바 있기에 험프리스가 직접 마약을 복용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단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돈벌이에 대단히 민감했다. 한국에서 엄청난 양의 의류를 싸게 사 미국으로 보내는 등 돈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소포에 마약이 들어 있던 것도 그런 차원의 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에서도 험프리스의 동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 마약밀거래 혐의로 수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몇몇 지역 언론이 험프리스의 미국 농구계 복귀를 심도있게 보도했다.
지난 1월 18일 ‘데일리카메라’라는 인터넷 뉴스사이트는 콜로라도주 덴버 인근의 집에 머물고 있는 험프리스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도했다. ‘험프리스는 아직도 콜로라도대학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전설적인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험프리스가 침체에 빠진 모교 농구팀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을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또 가장 최근인 3월 11일 ‘덴버포스트’ 신문은 “험프리스가 콜로라도 대학의 새 사령탑으로 앨빈 젠트리 피닉스 선스 코치를 추천한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국내 스포츠계의 마약 사건은 한국 프로야구에 한 시즌 30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던 장명부 씨가 90년대 초반 대마초 사범으로 구속된 것이 처음이었다. 이어 2002년 4월 당시 KCC에서 활약하던 재키 존스와 SK의 대체용병 에릭 마틴이 해시시 복용으로 유죄(징역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큰 물의를 일으켰다. 둘은 재판을 받으며 한국에서 철창 신세를 졌고, 확정판결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다시는 한국에 오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험프리스는 1984년 NBA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전체 13번째)을 받은 후 11시즌 동안 8772득점 433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활약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NBA 은퇴 후 모교인 콜로라도대 코치, NBA 스카우트(LA레이커스), 중국 지린 타이거즈 감독 등을 두루 경험한 후 2002년부터 세 시즌 동안 TG삼보에서 코치로 일했다.
유병철 객원기자 einer6623@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