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방한한 장웅 ITF 총재(왼쪽)가 김운용 전 WTF 총재를 만났다. 사진제공=무카스 | ||
현재 세 단체가 각각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기에 편의상 세 단체를 수장 이름을 붙여 장웅ITF, 최중화ITF, 트란콴ITF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국 내에서도 ITF대한태권도연맹(kitf.org 최중화 쪽), 최홍희ITF태권도(ITF태권도협회 itf-korea.com 장웅 쪽), ITFKOREA(itfkorea.net 트란콴 쪽)로 갈려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태권도는 김운용 전 IOC 위원이 만들어 올림픽 종목으로 올려놓은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의미한다. 하지만 태권도라는 이름은 ITF를 만든 고 최홍희 씨(2002년 사망)가 만들었고, 조직화 및 세계 전파도 ITF가 훨씬 앞선다. 이는 현재 ITF의 세 단체 모두 인정하는 내용이다(세 단체 모두 최홍희를 창시자로 받들고 있다).
대개 ITF를 북한의 태권도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1972년 장성 출신인 최홍희가 박정희 대통령과의 마찰로 캐나다로 망명하면서 ITF는 한국 정부와 각을 세우게 됐다. 한국은 이에 김운용의 WTF를 키운 것이다. 한국의 무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의 지원을 받는 데 한계를 느낀 최홍희는 1980년 시범단을 이끌고 평양으로 가 북한에 ITF를 보급한다. 엄밀히 말해 북한이 ITF를 낳은 게 아니라 ITF가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것이 맞다. 또 굳이 따진다면 ITF의 뿌리는 남쪽에 있다.
이렇듯 정통성과 영향력을 갖춘 ITF와 올림픽 종목으로 성공을 거둔 WTF의 통합은 태권도인들의 최대 염원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ITF의 분열이 문제다.
ITF의 분열은 2002년 6월 15일 최홍희가 평양에서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장웅 IOC 위원이 후계자로 지명됐다는 유언장이 공개되고 특별총회를 거쳐 장웅이 새 총재로 추대됐다. 하지만 곧 거센 반발이 일었다. 폐쇄적인 북한에서 유언장을 남긴 과정에 의혹이 많고, 특별총회는 코미디에 가까울 정도로 날림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 측이 최홍희를 죽였다는 ‘안락사설’까지 제기됐다.
대전에 기반을 둔 ITF대한태권도연맹의 오창진 사무국장은 “현직 IOC 위원이고, 또 북한정권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장웅이 더 알려졌지만 세계적으로는 세 단체 중 (장웅 ITF가) 가장 미미하다. 창시자 사망 당시 평양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다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안락사설에 대해서는 “캐나다에 창시자의 따님이 산다. 사망 때 평양에 있었는데 아직도 ‘북한이 아버지를 죽였다’며 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구인 출신인 장웅이 ITF의 정통성을 이을 수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트란콴 쪽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ITF태권도협회(장웅 측)의 김훈 사무국장은 “사실과 다른 얘기들이 너무 많다. 거의 비방 수준이다. ITF가 북한을 택한 것은 창시자의 뜻이었고, WTF는 물론이고 IOC(자크 로게 위원장을 의미)도 장웅 위원을 합법적인 ITF 총재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홍희가 죽고 장웅이 새 총재로 선출된 후 최홍희의 아들 최중화는 세를 규합해 캐나다와 영국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ITF를 구축했고, 베트남 출신으로 ITF 사무국에서 일을 했던 트란콴도 2003년 별도로 ITF룰 구성, 총재 자리에 올랐다. ITF가 정확하게 세 조각 난 것이다.
정통성 시비와 관련해서 <일요신문>에 주목할 만한 제보 하나가 들어왔다. 최홍희가 북한에서 사망하기 전 캐나다의 변호사에게 비밀리에 유언장을 남겨놨다는 것이다. 이는 최중화ITF 쪽의 주장으로 이 ‘진짜 유언장’은 어느 시점이 되면 공개하라는 단서가 붙어있고 공개되면 정통성 시비를 끝낼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고 한다.
최중화 씨는 최홍희의 장남으로 1980년대 초 캐나다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하던 중 전두환 씨 암살계획과 연계됐고, 나중에 이 때문에 실형을 살기도 했다. 한국에는 친북인물로 잘못 알려졌으나 오히려 ITF와 관련해 북한이 주도권을 쥐는 것에 반대해 북한정권에 낙인이 찍힌 상태다.
이 세 단체는 각각 ITF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면서 자신들이 가장 규모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도 전문 포털사이트인 ‘무카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최중화ITF가, 국제적으로 트란콴ITF와 최중화ITF의 인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웅ITF는 두 단체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
문제는 국내에서 장웅ITF가 ITF의 전체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 현실적으로 세가 가장 약한 장웅은 IOC 위원이라는 직위와 남북교류라는 카드를 앞세워 WTF와의 통합논의를 통해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기존 ITF 인사를 배제한 채 북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ITF를 새로 이끌려는 것. 장웅 위원은 이번 방한 때 이런 뜻을 WTF 관계자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WTF 측은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유지를 위해 IOC의 요구에 따라 억지춘향식으로 통합논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북한 시범단 방한 행사에 대한태권도협회가 참석하지 않았고, WTF도 조정원 총재가 장웅 위원을 만나는 것을 제외하면 실무진은 통합논의에 대해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 태권도인은 “WTF와 ITF의 통합은 기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또 설사 통합된다고 하더라도 덩치가 더 큰 두 ITF는 어쩔 셈인가. ITF 분열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태권도인 대부분이 냉담하고 또 다수의 ITF 태권도인들이 배제된 가운데 진행되는 태권도 통합은 의미가 없는 정치적인 쇼라는 지적이다.
유병철 객원기자